마음을여는 고전의향기[8]이백의 청평조를 읽으며
마음을여는 고전의향기[8]이백의 청평조를 읽으며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17.05.26 13:34
  • 호수 5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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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청평조를 읽으며
讀李白淸平調 (독이백청평조)

풍류로 치면 그 누가 이백의 재주만 하겠는가?
천자가 불렀을 때 취해서 쓰러질 지경이었지
고아한 「청평조」는 지금까지 으뜸이어라
침향정 북쪽에 모란이 피었었다네

風流誰似謫仙才 (풍류수사적선재)
天子呼來醉似頹 (천자호래취사퇴)
高調淸平擅今古 (고조청평천금고)
沈香亭北牧丹開 (침향정북목단개)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사가집(四佳集)』 권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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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조」는 당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달 밝은 밤 모란꽃을 감상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이백을 시켜 짓게 한 작품이다. 당시 이백은 몹시 취해 인사불성이었는데 명을 전달하러 온 신하가 얼굴에 물을 뿌려 정신이 들게 하자 청평조 세 수를 즉석에서 지었다고 한다.
서거정은 이 시를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다시 시로 남겼다. 1, 2구는 만취한 상태에서 천자의 명에 응해 아름다운 시를 휙 지어낸 이백의 호방한 성격과 재주를 칭찬한 내용이다. 그런데 3, 4구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이 작품이 뛰어나다고 말하려는 것은 분명한데 말구에 ‘침향정 북쪽에 모란이 피었다’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말구는「청평조」 제3수(아래)에 대한 오마주(경의)이다.

이름난 꽃과 아름다운 여인 서로 기뻐하니
임금은 오래도록 웃음 머금고 바라보네
봄바람에 끝없는 시름 풀어 버리고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섰네

名花傾國兩相歡 (명화경국양상환)
長得君王帶笑看 (장득군왕대소간)
解釋春風無限恨 (해석춘풍무한한)
沈香亭北倚欄干 (침향정북의난간)

봄바람을 맞으며 침향정 주위에 핀 모란을 감상하는 모습을 그렸다. 어떤 판본에는 3구의 ‘解釋(해석)’이 ‘解識(해식)’으로 되어 있어 ‘봄바람이 끝없는 한을 품을 것을 알겠네. 그들이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섰으니’ 정도로 풀이하기도 한다. 모두 현종과 양귀비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그린 낭만적인 묘사이다.
개인적으로는 제3수를 읽을 때면, 먼저 달빛 아래 봄바람이 부는 침향정에서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만개한 모란을 감상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애틋함과 훈훈함이 느껴지는 무척 로맨틱한 장면이다. 특정한 의도나 문제의식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네 개의 구절로 이런 아름다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이백의 재주가 무척 감탄스러울 뿐이다.
중화권의 유명 가수 등리쥔(鄧麗君, 1953~1995)은 이백의 청평조를 노래로 불러 녹음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절반만 녹음하고 그녀가 서거하는 바람에 이 노래는 발표되지 못하다가 20년 만에 후배 가수 왕페이(王菲)가 나머지를 녹음해 2015년 드디어 이 노래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글이 아닌 귀로, 음악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청평조를 감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낭만적 정취가 물씬 느껴지곤 한다. 500여 년 전 서거정이 이 시를 두고 왜 이러한 표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출처: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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