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찍는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보다
자신을 찍는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보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5.26 13:43
  • 호수 5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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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 전
▲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 ‘셀피’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선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고상우 작가의 ‘Better Man’

작품 앞에서 사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관객참여형 전시
김가람 등 작품 통해 ‘셀카’로 존재 이유 찾는 심리 탐색

5월 23일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 곳곳에선 ‘찰칵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시에서는 작품 보호를 위해 관람객의 사진 촬영을 제한한다. 하지만 이날 사비나 미술관 풍경은 달랐다. 20대부터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까지 너나할 것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는 모습도 남달랐다. 카메라에 작품을 담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기에 바빴다.
스스로 자신을 찍는 ‘셀피’(Selfie, 국내에서 쓰이는 ‘셀카’와 같은 말)를 주제로 한 이색적인 관람객 참여형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8월 4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 전에는 강은구, 고상우, 김가람, 신남전기, 아말리아 울만, 업셋프레스 등 8팀이 각자 셀피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2002년 호주의 온라인 포럼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셀피’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찍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걸 뜻한다. SNS가 확산되하면서 현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13년에는 옥스퍼드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 뽑히기도 했다.
셀피를 소재로 삼은 만큼 단순히 보기만 하는 전시가 아니다. 사진 촬영이 자유롭지 못했던 기존의 전시에서 벗어나 관람객은 전시 작품과 더불어 다채로운 방식으로 셀피와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전시는 시작부터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전시장 1층에 있는 김가람 작가의 설치작품 ‘셀스타’(#SELSTAR)가 대표적이다. 셀피가 잘 나오게 조명을 설치했고, 셀카 전용 카메라도 비치했다. 뿐만 아니라 작품 뒤에 화장품을 놓아 사진을 찍기 전 화장을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돋보인다.
또 동작을 인식하는 카메라와 특수효과 화면을 이용해 음악과 함께 즐기는 설치 작품, 그리고 전혀 보정이 안 되는 옛날식 카메라로 직접 자신을 찍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물나무 사진관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자화상 사진관’이 대표적이다. 지하에 마련된 이 공간에선 아날로그 방식의 촬영기법으로 자신의 사진을 직접 찍을 수 있다. 어떤 보정도 없이 내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이다. 관객은 사진을 찍으며 거울을 통해, 또 인화된 사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별도의 필름이 필요해 전화로 사전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한 업셋프레스의 작품 ‘워바타 스티퍼 파병 추신’을 체험하는 관람객의 모습.

업셋프레스(안지미·이부록)의 설치 작품 ‘워바타 스티퍼 파병 추신’에선 전쟁 반대 스티커를 들고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이후 일상에서 찍은 인증샷을 작가에게 보내면 전시장 벽면에 함께 설치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일상이 전쟁터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2층 전시장에 있는 고상우 작가의 ‘내성적인 사람’도 주목할 만하다. 팝스타 마돈나가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됐던 고상우는 자화상을 음화로 반전된 사진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미국에 살면서 느꼈던 소외감과 외로움 등의 감정을 얼굴에 글씨로 써 표현했다. 전시장에 놓인 모니터로 작품을 비춰보면 얼굴에 글씨를 칠한 작가의 실제 얼굴이 나온다. 관람객도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 특별한 시각적 체험도 할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강은구 작가의 ‘월 앤 도어스’(Wall and Doors)는 한번 들어가면 셔텨가 닫혀 30초간 나올 수 없는 두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방에는 다른 방과 통하는 카메라와 모니터가 있다. 실제 관계는 단절돼 있으면서 가상의 SNS 셀피로 연결된 현대인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작가듀오 ‘신남전기’는 ‘마인드 웨이브(Mind Wave)’를 통해 작품 앞에 선 관객의 모습을 화사하게 포토샵으로 보정하거나 예쁘게 보이는 ‘얼짱 각도’ 등의 효과로 이미지의 왜곡을 체험하게 해준다. 자신의 본래 얼굴을 최대한 숨기는 셀피의 속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내용과는 별개로 화려한 음악에 맞춰 자유자재로 변하는 얼굴을 보는 재미도 준다.
재일교포로 주목받는 사진가인 김인숙과 독일의 사회학자 베냐민 라베는 한국과 일본의 셀피 현상을 설문, 영상 인터뷰 등을 통해 분석했다. 여기에 김 작가가 2004년 진행한 자화상 프로젝트 ‘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재구성, 자화상에 대한 인식·개념의 변화를 드러낸다.
덴마크 출신의 독립큐레이터 올리비아 무스의 ‘뮤지엄 셀피 프로젝트’도 독특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고전 작품 속 초상화가 ‘셀피’를 찍는다는 발상의 작품이다. 관객도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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