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업체 ‘카르티에’가 수집한 미술 명품의 세계
명품업체 ‘카르티에’가 수집한 미술 명품의 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6.09 13:49
  • 호수 5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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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하이라이트’ 전
▲ 세계적인 명품업체 '카르티에'가 수집한 미술품 중 중요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중국 작가 차이궈창의 ‘화이트톤’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1500여 소장품 중 주요작 100여점 소개
거인 연상시키는 론 뮤익 ‘침대에서’, 차이궈창 ‘화이트톤’ 등 볼만

지난 6월 2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 키가 6m에 달하는 거인이 나타났다. 전시실 한쪽 공간에 마련된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이 거인을 보고 관람객들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거인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 ‘침대에서’는 이 거인의 혈관, 주름, 머리카락, 홍조, 작은 점까지 실제 사람을 방불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프랑스 명품업체 ‘카르티에’가 수집한 작품답게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카르티에가 현대미술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이하 카르티에 재단)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하이라이트’ 전이 오는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84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카르티에 재단은 미술전시를 후원하거나 유명한 작품들을 소장하는 일반적인 다른 미술재단들과는 달리 전시될 작품의 제작을 의뢰하는 ‘커미션’ 방식으로 작품을 소장해왔다. 재단에서 미술가와 철학자, 음악가, 조각가를 아우르며 협업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이중 일부를 구입해 재단의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현재 소장품은 1500여점에 달하며 50여개국의 350여명 작가 작품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는 ‘하이라이트’라는 제목처럼 재단의 주요 소장품 100여점을 골라 소개한다. 회화, 비디오아트, 사진, 판화, 조각 등 장르도 다양하다.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층 전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론 뮤익을 비롯해 데이비드 린치, 사라 지, 레이몽 드파르동, 쉐리 삼바, 클라우드 안두자르, 장 미셸 오토니엘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작들 중에는 유독 대규모 작품들이 많다. 중국 작가 차이궈창(蔡國强)이 종이에 화약으로 표현한 ‘화이트톤’은 가로 18m, 세로 4m에 달하는 대작으로 마치 동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미국의 미술가와 건축가 그룹인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의 ‘출구’(EXIT)는 관객을 둘러싼 전시장 전면을 비디오 화면으로 채워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했다. 화면에서는 자연재해, 삼림파괴 등 인간이 이주하는 여섯 가지 원인을 다양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생태음향 전문가, 과학자, 음악가로 활동해 온 미국의 버니 크라우스와 영국의 컬렉티브 그룹 유브이에이(UVA)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진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는 학제 간 협업과 융합예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크라우스는 전 세계 육지 및 해상동물 1만5000여 종의 소리를 포함해 총 5000시간이 넘는 자연 서식지의 소리를 50년 가까이 녹음했다. 그룹 유브이에이는 그 녹음된 데이터를 빛 분자로 변환한 뒤 3차원 설치물로 구현했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의 원초적인 자연을 소리로 느끼게 해준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레이몽 드파르동이 아내 클로딘 누가레와 함께 제작한 영화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는 2008년 카르티에 재단이 기획한 전시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춰라’에 소개된 작품이다. 유목민, 외딴섬의 주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디언 종족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뿌리, 인구와 땅의 문제, 언어, 역사 문제를 다룬다.

▲ 론 뮤익의 ‘침대에서’

타 영역에서 더 이름을 떨치는 유명 예술인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꽃과 동물을 연관시킨 동물 형상의 꽃병 연작을,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드로잉작업과 석판화 작품을 보여준다. 드로잉 ‘바인더 작업’은 1970년부터 2009년까지 종이성냥부터 포스트잇까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제작한 259점으로 구성된 연작이다. 미술가 겸 음악가 패티 스미스의 설치작품 ‘산호초 바다의 방’은 스미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에게 헌정했던 작품이다. 패티 스미스의 시와 사운드트랙, 자연 이미지를 보여주는 프로젝션 화면 등으로 구성된다.
카르티에 재단은 이번 전시를 위해 별도로 한국 작가들에게도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미술작가 박찬경 형제로 구성된 팀 ‘파킹찬스’는 박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픈 세트를 3D 영상으로 촬영하고 소리를 입체적으로 입한 사운드-이미지 영상설치작품 ‘격세지감’을 제작했다. 3D 안경을 쓰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관람하는 작품이다.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웹툰 작가 선우훈은 관객이 마우스를 움직이면 눈앞의 대형화면에 이미지와 대화가 나타나는 디지털 드로잉 작품을, 2007년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이불은 백두산 천지에서 영감을 얻은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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