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7017’을 ‘야경식음(夜景食飮)’의 길로…
‘서울로 7017’을 ‘야경식음(夜景食飮)’의 길로…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16 10:52
  • 호수 5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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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개의 원형 화분들로 가득 차 온전히 걷기 힘들어

저녁 어스름에 서울역 고가를 찾았다.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로 변한 그 고가도로이다. 이전에는 자동차로만 통과했던 도로였다. 서울역 위를 걸어서 지나간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라이트를 길게 비추며 남대문로를 질주하는 차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눈에 익숙했던 건물들이 정답게 다가왔다. 일제 강점기 건축물 서울역의 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갈색의 대우빌딩, 연세빌딩과 남대문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기자는 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동행한 지인이 “7017이란 숫자가 뭐지?” 하고 물었다. 숫자만 나오면 머뭇거리게 된다. 스마트폰을 켜고 확인해 보니 “1970년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를 2017년 회현동‧만리동‧중림동 등 17개 보행길로 연결한다”는 의미였다. 뜻은 좋지만 많은 시 예산이 투입된 데다 국민적 호기심을 불러 모았던 사업 치고는 친근감이 덜 가는 명칭이다.
서울로는 도심철도를 공원으로 재이용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나 프랑스의 ‘프롬나데 폴랑떼’를 모델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스마트폰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다. 전화 기능 외에 궁금한 것을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시켜주는 등 컴퓨터 역할까지 해주니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걸어볼까”하는 마음으로 한발자국을 떼는 순간 기자의 몸은 휘청했다. 다른 사람들의 손과 어깨에 부딪치거나 둥그런 시멘트 조형물에 가로막혔던 것이다. 둥그런 화분에는 미스김라일락‧접시꽃‧수국 등이 심어져 있었다. 키 큰 회양나무는 ‘꽂혀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했다. 무려 50과 228종의 식물이 654개의 원형화분에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앞에서 오는 사람,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 옆에서 나란히 걷는 사람들이 서로 길을 비켜주고 자기 길을 찾느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공사가 한창일 때 대부분의 시민은 뉴욕이나 프랑스의 고가공원처럼 한가롭게 잔디위에서 책을 보거나 조깅을 할 수 있는 길을 상상했다. 그런데 서울로는 갖가지 조형물로 온전하게 걷기조차 불편했다. 한마디로 화분들로 가득 찬 식물원이었다.
기자와 지인은 걷는 걸 포기하고 시멘트화분 테두리에 걸터앉았다. 지인이 입을 열었다.
“서울로의 원형화분들을 다 걷어내고 시멘트 길에 잔디를 깔아 걷기 편한 길로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
기자가 한술 더 떠 엉뚱한 발상을 내놓았다.
“명동의 포장마차들을 이리로 옮겨오면 어떨까.”
지인이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엉겹결에 내뱉은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굿 아이디어’였다. 과거 명동은 우정과 사랑, 낭만과 열정이 가득 찬 젊음의 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옛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길 양옆으로 수백 개의 포장마차가 들어찬 ‘불량음식 통’(?)이 돼버린 지 오래다. 역겨운 음식조리 냄새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산책할 기분을 빼앗긴다.
명동의 ‘포장마차군단’을 서울로에 옮겨다놓으면 명동거리도 깨끗해지고, 서울로도 단순‧무용성에서 벗어나 시민들에게 ‘야경식음(夜景食飮)’의 멋진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지인이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거들었다.
“포장마차 한켠에 자전거 길도 만들어 자전거가 고가 위로 다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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