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 열혈 대한 청년의 유쾌‧통쾌한 항일투쟁기
영화 ‘박열’, 열혈 대한 청년의 유쾌‧통쾌한 항일투쟁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6.23 14:20
  • 호수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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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를 다룬 타 작품과 달리 이번 영화는 실제 독립운동가 박열을 내세워 익살스럽게 항일투쟁을 다뤘다.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

‘사도’ 연출한 이준익 감독 작품… 독립운동가 박열의 실화 그려
일제시대 다룬 타 작품들과 달리 항일 투쟁 익살스럽게 연출

안중근, 윤봉길, 안창호 등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위인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선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폭탄과 총으로 과격하게 저항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진 속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양장을 입은 조선 선비를 연상케 한다. 이런 점에서 박열(1902 ~1974)은 달랐다. 덥수룩한 수염과 장발, 대충 옷을 걸치고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는 그의 모습은 흡사 동네 건달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조국을 향한 마음만큼은 여느 독립운동가와 똑같았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박열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 ‘박열’이 6월 28일 개봉한다. 작품은 관동대지진(1923)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다뤘다.
박열은 18세 때 3‧1운동에 참가한 후 도쿄로 건너간다. 여기서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시작한 그는 19세 때 재경조선학생들과 ‘혈거단’이라는 청년단체를 만들고, 이듬해 의거단과 흑도회를 조직해 항일 투쟁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반대하는 항일운동 여성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연인이자 동지가 된다.
두 사람은 이후 관동 대지진 때 벌어진 관동 대학살을 마주한다. 1923년 관동 지방에서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어나 약 1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이로 인한 민란의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본 군인과 경찰, 자경단을 투입해 무고한 조선인 6000명을 학살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잠재우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당시 박열과 가네코가 활동했던 불령사(한인 14명, 일본인 5명을 모여 만든 무정부 사상 단체)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한다. 일본 내각의 계략을 눈치 챈 박열은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일본의 끔찍한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대역죄인이 돼 법정 싸움에 뛰어든다.
‘왕의 남자’ ‘사도’ ‘동주’를 통해 시대극의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이준익 감독은 기존 작품들과 달리 독립운동을 유쾌하게 다룬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 드라마틱한 요소를 넣어 민족의 아픔과 투사들의 감동적인 희생정신을 부각시키는데 노력했지만 이번 작품은 이와는 반대 행보를 보인다.
이는 영화 도입부에서 박열이 동인지 ‘조선청년’에 ‘개새끼’라는 시를 발표하는 장면부터 잘 보여준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일본 근현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식민지 청년의 울분을 담아 풍자한 것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박열은 어떠한 억압에도 결코 지친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관료들을 쥐락펴락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이어간다. 후미코 역시 마찬가지다. 박열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스스로 대역죄인을 자처한 그녀는 박열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내며 일제를 그 누구보다 당당히 비판하고 조롱한다. 활기찬 음악과 함께 일제에 주눅 들지 않고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활약은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통쾌함을 선사한다.
일제를 단순히 절대악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뇌부, 서양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관료들, 합리적인 논리를 내세워 무자비한 폭력성에 반대하는 인물 등을 등장시키며 일제를 입체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이런 설정은 박열의 투쟁이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부각시켜 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두 주연배우의 열연이다. 이제훈은 본래 지니고 있던 말끔한 이미지를 탈피해 조선 최고 불량 청년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껄렁대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야수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살아있는 눈빛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격정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법정 장면은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가 연기한 박해영 형사를 연상케 했다.
최희서는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던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에서 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쿠미 역으로 열연했던 그녀는 ‘박열’에서 한층 더 깊어진 연기를 선보인다.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하다가도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늘어놓는 모습은 큰 웃음을 선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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