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직면한다
‘죽음’과 직면한다
  • 관리자
  • 승인 2007.09.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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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칠순을 맞아 동부인해서 해외여행을 하고 귀국한 A씨가 색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고 비행기를 탑승했더니 한결 마음이 개운했다는 것이다. 그가 여행자보험에 든 것은 지난 6월 캄보디아에서 여객기 사고가 나서 많은 한국인관광객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건 발생 직후 A씨와 친구들이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부부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떠날 때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도리라는 점에 대해서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도리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만약 부부가 동시에 비행기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 그 뒤처리는 불가불 자식(들)이 맡게 되는데, 그럴 때 부모가 보험이라도 들어놓았으면 자식(들)의 부담을 그만큼 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불행히도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 희생자들은 어느 누구도 별도의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다. 하기야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행자보험 가입자가 10명 중 3명밖에 안된다니 이상할 것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캄보디아여객기 희생자들이 보상금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항공기 탑승자가 개인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항공기 사고로 승객이 사망할 경우 자동적으로 나오는 보상금이 있다.

 

캄보디아 여객기 사고 승객 13명 중 어린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출국 전 여행사와 패키지여행상품을 계약할 때 여행상품에 포함된 단체 여행자보험에서 1인당 사망보험금 1억원과 항공사가 국제협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승객 사망 때 지급하는 7만5000 달러(약 7000만 원), 도합 1억7000만 원씩이 지급되었다.

 

이밖에 이번 경우에는 여행사 측에서 자진해서 1인당 3000만 원씩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하기야 이런 액수도 국내에서 버스로 여행하다가 비명횡사한 경우보다는 편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캄보디아 여객기의 사망 승객 13명 중 1명은 패키지여행상품을 은행신용카드로 결제했기 때문에 은행 측에서 1억원의 사망보험금 1억원을 추가로 가입시켜 주는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그 혼자만은 2억7000여만 원을 받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 A씨 부부는 도대체 얼마씩의 여행자보험에 가입했길래 그토록 마음이 개운했다는 것일까. A씨는 귀국 후 처음에는 쑥스럽다고 보험금 액수를 밝히려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털어 놓았다.

 

부부 각각 3억원 씩 사망보험금이 나오는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합하면 6억원에 이르는 액수지만 보험료는 불과 4만여 원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행자보험에는 사망의 경우 뿐 아니라 여행 중 당한 사고, 신체상해, 질병 치료, 휴대품 분실 파손 등도 포함되어있다.

 

그래서 여행 중 갑자기 병이 나 현지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고 어마마한 치료비 걱정을 안 해도 괜찮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A씨의 기분이 개운했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A씨가 이번에 해외여행을 하기 전에 여행자보험 가입과 함께 그의 재산목록을 만들어 아들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그가 소유한 부동산 뿐 아니라 금융재산과 서화 등 동산 내역, 그리고 채권과 채무액도 자세히 적었다고 한다.

 

금융재산 가운데 은행예금의 경우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도 적어두었다는 것이다. A씨는 만약의 경우 자식들이 부모의 재산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도 유익하고, 깨끗한 ‘신상정리’라고 강조했다.


하기야 서양에서는 노인들이 유언을 써서 금고 안에 넣어 보관하면서 해마다 연시를 맞아 그 내용을 경신한다고 한다. 이들의 유언 내용은 주로 자식에게 넘겨줄 유산의 배분에 관한 것이어서 변호사의 공증도 받아놓는다고 한다.

 

A씨의 말을 듣고 보면, 해외여행을 떠날 때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나 재산목록을 만들어 자식에게 남겨 놓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젊은 시절에는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재수 없는 생각, 아니면 너무 이해타산에 밝은 속물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때고 죽기 마련이고, 자신에게는 항공기 사고 같은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죽음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기 보다는 직시하고 직면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며 경건한 삶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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