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버찌
여름
벚나무 알림장에는
우수수 우수수
까맣게 탄 꽃들의 마침표
박해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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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흐드러진 벚나무에서 꽃잎 흩날리는 걸 보고 나는 꽃들의 축제는 그때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다. 가슴 두근거리며 가져다 붙인 온갖 찬사와 그토록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하던 기억이 까마득히 잊혀져버린 즈음에서 시인은 이제야 꽃들은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여름 알림장 종결어미 뒤에 빼곡하게 찍힌 저 마침표들이 없었다면 꽃들은 꽃잎과 함께 영 영 잊혀져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꽃이 진다고 끝은 아닌 거지. 저토록 옹골찬 마침표를 찍고 사라진다 해도 나무에게는 온 몸으로 불타는 계절이 또 남아있지 않은가. 다 타버린 빈 몸으로 다시 꽃눈을 만들고 봄을 불러들이겠지. 매번 꽃의 마침표를 위해 나머지 계절은 부지런히 제 몫을 다 해내는 거겠지. 저건 꽃이 나무에게, 나무가 계절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라고... 그리고 다시 올 꽃들에게 보내는 결연한 다짐 같은 것이라고….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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