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도향 “치매 할머니가 ‘벽오동…’ 노래 듣고 10년 만에 말문 트였어요”
가수 김도향 “치매 할머니가 ‘벽오동…’ 노래 듣고 10년 만에 말문 트였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7.14 11:40
  • 호수 5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숨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 잘 들여다봐야 죽음 공포 사라져
CM송, 태교, 명상 음악 다수 작곡… 대한노인회歌도 만들어

 

“노인들이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다.”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부른 가수 김도향(72)의 첫마디이다. 김도향은 “과거 선조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축제로 여겼다”며 “그렇게 되려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초, 서울 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김도향을 만나 호흡을 통한 건강 장수법과 50년 노래 인생을 들었다. 김도향은 ‘대한노인회가(歌)’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뭘 하나.
“과거 ‘서울오디오’라는 큰 회사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이름만 유지한 채 개인사무실로 씁니다. 작곡도 하고 노래연습도 하고 그래요. 나이를 먹으면 매일 목소리를 풀어줘야 노래가 나와요.”
-지방 무대에 많이 선다고.
“작년의 경우 강연은 열댓 번, 노래는 30~40회 했어요.”
-죽음을 맞이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죽지만 다들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모두가 ‘나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살고 있어요. 죽음이 두렵고 죽는 순간에도 내가 죽었다는 걸 모릅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죽었구나’를 깨우쳐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큰 스님이 앉아서 열반에 드는 걸 ‘좌탈입망’이라고 합니다. 몸에서 떠나는 자기 자신(얼)을 보는 겁니다. 죽는 순간 ‘내가 죽는구나’ 그걸 알면 마음이 편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방법은.
“숨을 봐야 합니다. 들이쉬고 내뱉는 과정을 하나로 잡고 하나, 둘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는 겁니다. 석가모니가 직접 하던 ‘수식관’(數息觀)이란 명상법이기도 합니다. 100번을 놓치지 않고 쉬면 대성공입니다. 열 번만 성공해도 좋아요.”
-무엇에 좋다는 말인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해지고 장수합니다. 숨을 보면서 살면 욕심 같은 게 허망하게 여겨지고 연명치료를 위해 코에 호스를 꽂는 일들이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김도향의 설명은 이어졌다. 숨 쉬는 걸 보는 게 너무나 쉬운 일이라 사람들은 잊는다. 마치 안경을 낀 채 안경을 찾듯이. 숨을 볼수록 숨이 밑으로 내려간다. 죽는 순간엔 목까지 숨이 차오른다. 아기들은 어디로 숨을 쉬나. 배꼽으로 쉰다. 그게 단전호흡의 기초이다. 숨을 봐야 단전호흡이 된다. 단전호흡의 기초 속에만 있어도 건강하게 산다. 김도향은 “노인회에서 ‘안보’ 같은 것보다는 ‘숨 잘 쉬자’를 구호로 했으면 좋겠다.

이번 인터뷰 제목도 ‘어르신들 숨을 잘 쉬자’로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도향은 경기고,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1970년 ‘투 코리언스’로 데뷔해 ‘벽오동 심은 뜻은’과 ‘언덕에 올라’를 히트시켰다. ‘서울오디오’를 설립해 CM송 3000여곡을 만들었다. 1980년에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9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1990년대엔 명상과 태교 등 정신세계를 탐닉하는 곡들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최근까지 음반을 꾸준히 내고 TV에도 얼굴을 비쳤다. 2년 전부터 하루 2시간씩 평화방송 라디오 음악프로 ‘명동연가’를 진행하는 한편 지자체 주최의 노인 프로그램에 나간다.

-처음부터 가수가 되려고 했나.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조감독 때 차비도 못 받아 신촌에서 충무로까지 걸어 다녔어요. 그래서 돈 좀 벌려고 노래를 하게 됐어요.”
-노래를 잘 불렀나 보다.
“우리 집은 학자 집안이라 노래 쪽은 전혀 아니었어요. 저를 포함해 식구들이 음치였고 제가 노래한다고 하자 다들 비웃었어요.”
-음치였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소리에 관해 일찍 깨어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좀 더 멋있게 하려고 실험적인 소리를 냈더니 음치라고 하더라고요. 중학교 때 성가대 맨 뒤에서 제가 소리를 내면 친구들이 ‘음은 비슷한데 소리의 질이 이상하다’고 그랬어요(웃음).”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무슨 뜻인가.
“CM송 만들다가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쓸데없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회와 참회의 노래이지요. 당시 (권한이 없었던) 최규하 대통령 주제곡이란 말이 돌며 빠르게 확산됐어요.”
-CM송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히트시켰나.
“수백 곡을 쓰고 나니까 요령이 생겨 어떤 마음 상태에서 곡이 잘 나오는가를 알게 됐어요. 1000곡 되니까 보기만 해도 소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중 마음에 드는 곡은.
“LG그룹의 기업 이미지를 홍보한 ‘사랑해요 LG’(1995년)예요. CM송이 물건을 팔기 위해 강렬하고 옹색한 주장이 많지만 ‘사랑’이란 말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대한노인회 노래도 만들었다고.
“2008년쯤인가 안필준 회장(1932 ~2009년)이 대한노인회를 하나로 꿰뚫자는 개념의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하셨어요.”
-작곡료가 비쌌을 텐데.
“두 곡을 보여드렸더니 ‘다 좋다’면서 한 곡 값만 주셨어요. 그마저도 노래 값은 받지 않고 작곡, 편곡, 연주료만 받았어요(웃음).”
-저작권협회로부터 작곡료를 많이 받겠다.
“저작권이 없던 시대에 만든 CM송들이라 별거 없어요. 제가 우기면 되겠지만 그러기도 뭣해서 모른 척 합니다. 그 밖의 노래들은 나온 지 40년이 넘어 요즘은 노래방에서 잘 부르지도 않아요.”
-최근에 쓴 곡은.
“해군과 태권도협회 쪽에서 의뢰해 몇 곡 만들었어요.”
-김도향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생활이자 생활 수단이기도 합니다. 남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싫은 일을 하거나 쓸데없이 아부하고 술도 먹어야 하지만 다행히 저는 비교적 고통 없이 살아왔어요.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지요.”
-치매 환자가 노래를 듣고 깨어났다고.
“2001년 제주도의 한 요양원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10년째 말을 못하는 치매 할머니가 ‘벽오동을 심은 뜻은’의 ‘와뜨뜨’ 하는 순간 ‘김도향이다’ 라고 외치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다들 눈물을 흘렸어요. 그걸 보고 저도 감동 받아 다시 노래를 열심히 불러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음악으로 치매를 고치는 방법이 있을 것이란 확신도 가졌어요.”

김도향은 수년 전 미국의 한 의료기관이 치매에 걸린 쥐의 해마에 자극을 주어 치매를 고쳤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소리는 진동이니까 태교나 명상음악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치매음악을 만들어 환자에게 들려주면 완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이를 위한 연구비를 신청했으나 과학적으로 그 과정을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김도향은 인터뷰 말미에 “저도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천자문을 외운다”며 “초서로 쓴 천자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암호 같이 어렵게 생긴 제2 초서를 700자 정도 외웠다”며 웃었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