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표음문자
버섯, 버섯, 버섯
거듭 읽다보면
벗어, 벗어, 벗어
지금 나더러 벗으라는 건가
껍데기뿐인 나더러
나석중(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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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버섯이 정오를 지나 사라지고 있다. 숭숭 뚫린 껍데기 같은 옷 하나 걸치고 있을 뿐인데 누군가 자꾸 그런 옷마저 벗으라고 한다면 정말 황당하고 기막힐 것 같다. 사라져가는 슬픔 따위야 당사자의 몫이라는 건가. 아침에 피었다 저녁 무렵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 하루의 시간마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목소리를 용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살다보면 우리는 늘 상대방이 아닌 나의 입장에서만 먼저 생각한다. 상대야 어떤 상황이든, 어떻게 느끼건 상관없다는 듯 자기 할 말만 해버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상처받는 사람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디카시로는 보기 드물게 언어유희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재미뿐만 아니라 교훈적인 내용도 함께 슬그머니 건네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한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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