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와 친해지기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해지기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7.09.15 13:09
  • 호수 5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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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할아버지를 모를 때는
노인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어르신과 짝지어 활동한 뒤엔
청소년들의 인식 크게 변화
사회가 나서 1·3세대 이어줘야

나는 외할머니 손에 컸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우리 4남매는 할머니가 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키워주셨다. 할머니의 헌신, 끝없는 사랑은 늘 눈물의 샘이었고 착한 감성의 원천이었다. 따로 말로 하진 않으셨지만, 그 분의 삶의 모습으로 세상의 모든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웠다.
자랑하고 싶은 것도 제일 먼저 할머니, 맛있는 것도 할머니, 미안한 것도 할머니였다. 아나운서 연수를 마치고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고 부상으로 라디오를 받았다. 가장 먼저 할머니께 드렸다. 그 라디오에서 나오는 ‘잠시 후 네 시를 알려 드립니다’ 하는 짧은 시간고지가 내 목소리임을 가려내시며 기뻐하셨다.
월급을 받으면 그 길로 떡집으로 달려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인절미를 사다드렸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이불을 덮어쓰고 울고 있을 때도 그 이유는 도시락 싸주신 할머니께 기쁨을 드리지 못한 자책 때문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런 할머니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의 숫자가 아이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나라가 되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5세 미만 유소년 인구를 추월했다고 한다.
전체인구의 14.2%를 차지한다. UN은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그리고 20%를 넘기면 ‘초고령 사회’라고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다가 17년 만에 ‘고령 사회’가 됐다.
이렇게 노인들의 숫자는 많은데 과연 아이들의 마음속엔 따뜻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까 의문이다. 현대 핵가족 시대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을 알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의 제안은 청소년과 실버세대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노년 인적자원을 세대 간 소통과 멘토링으로 100퍼센트 활용하자는 말이다. 성공사례도 없지 않다.
지난해 안동청소년문화센터에서는 ‘나도 손자 손녀, 할매 할배 있어!’라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격 세대 간의 고정관념을 깨고,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대상을 서로 매칭하고 1․3세대 간의 소통을 도모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어르신과 중학교 1~3학년 학생들 각각 20명씩 참가해 미팅하듯 1대1로 짝을 지었다. 먼저 서먹서먹함을 깨뜨리기 위해 퀴즈 풀기 등 놀이를 거친 후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서로 문자보내기를 했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함께 요리하기. 솜씨 좋은 어르신 한 분이 요리 선생님이 되어 고유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울 할매의 부엌’ 시간이었다. 고추장떡, 우엉김밥, 매실청, 고추장을 직접 만들었다.
요리하는 동안 참가자들 사이에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생기고,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이 우리 고유 음식의 깊은 맛을 발견하게 됐다.
특히 관심이 갔던 것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과 후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노인에 대한 생각을 알아본 것이다. 참가한 중학생들은 ‘내가 생각하는 노인은?’이라는 질문에 답했다. ‘깨끗하다/지저분하다’, ‘잘 생겼다/못생겼다’, ‘재주가 많다/잘 하는 게 없다’, ‘명랑하다/우울하다’, ‘중요하다/쓸모없다’, ‘너그럽다/이기적이다’, ‘부지런하다/게으르다’, ‘건강하다/허약하다’ 등 20개 항목에 답했다.
설문지 분석 결과,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후 노인에 대한 인식의 현저한 변화가 있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이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보다 더 깨끗하고, 훨씬 더 건강하며 세련되고, 친절하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도 잘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칭찬을 받으니 기뻤고,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답했다. 함께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던 할머니가 다음 날 김밥 만드는데 안 오시자 무척 서운해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무한대의 사랑을 퍼주고 싶은 많은 노년의 인적자원들이 있다. 문제는 이 양측을 어떻게 이어주느냐는 것이다. 어떤 정책을 마련해 이들을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연결해 주느냐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사회와 국가가 나서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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