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하는 갑재와 당하는 영훈은 별것 아니라 야만과 문명의 대립이었다
공격하는 갑재와 당하는 영훈은 별것 아니라 야만과 문명의 대립이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9.22 13:25
  • 호수 5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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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54>

영훈의 대꾸에 체육가는 불끈하고 혈기를 돋구면서,
“간판을 걸구 왜 사람을 모으는 것야. 꽃에 나비 떼 모아들 듯 거리의 달뜬 것들을 휩쓸어다간――.”
그 달뜬 남녀들의 한 사람이 거기에도 있지 않느냐는 듯 그제서야 갑재는 미란을 멸시하는 눈초리로 흘끗 바라본다.
“나비야 모여들든 말든 꽃은 꽃대로 있는 게지. 나비 위해 있는 꽃인가.”
영훈의 목소리에 비기면 갑재는 아우성을 지르는 셈, 말끝마다 어성이 높아졌다.
“그래두 뻔질뻔질하게 대꾼가. ――멀쩡한 사람을 후려낸 건 누구냐. 허구한날 집을 떠나 여기 와 백히게 하구. 유인이 아니구 무어야.”
“약혼자의 일건을 자기로서 처리를 못하구 이 법석을 하는 당신이 얼마나 부끄럽구 어리석은 줄을 모르나. 약혼자에 대해서 당신 이상으로 알 사람이 누구란 말야. 자기를 모욕하구 약혼자까지를 모욕하는 셈이지.”
가야에게는 과혹했을까. 그러나 영훈은 자기의 입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거기까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는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지나 않는가도 싶었다. 미란에게는 그 분위기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짓밟고 신경을 장작개비로 짓쑤셔 놓는 듯한 그런 야만스런 분위기였다. 그의 날카롭고 미묘한 감정은 실오리같이 헝클어졌다. 그러나 그 정도쯤을 야만이라고 생각한 것은 미란의 오산이었다. 참으로 야만이 온 것이다. 갑재의 자태는 육신이며 말투가 미란으로서 보면 그대로가 감정의 교육이라고는 받지 못한 야만인의 그것이었다.
“그래두 어느 때까지 사람을 농락할 생각인가.”
“당신 약혼자를 사람으로 여기구 하는 소린가 그게.”
영훈의 말이 떨어지자 가야는 자리를 차구 벌떡 일어섰다.
“좀 그만들 둬요 제발.”
눈은 누구를 보는 것일까, 초점이 흩어졌고 얼굴에는 눈물이 어리어 보인다. 방안의 그 무거운 공기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문께로 휭하니 걸어갈 때 그의 뒤를 잇는 듯 선뜻 자리를 일어선 것이 갑재였다.
“이 염치없는 것. 남의 일을 죄다 틀어 놓구.”
거대한 몸짓으로 다짜고짜로 달려들면서 영훈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주먹이 떨릴 때 그까짓 말이라는 게 무슨 소용 있는 것이냐. 이것이 체육가의 버릇이라. 어디 대답을 하려거든 얼마든지 해보렴.”
미는 바람에 영훈은 나뭇가지같이 해깝게 뒷걸음질을 쳐서 들창기슭까지 밀려가고 말았다. 미란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주먹을 쥔 것은 물론이요 문을 열려던 가야도 선뜻 돌아서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이 야만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아무리 진보되어도 야만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은 까닭에 스스로 야만을 부르고 요구하는 것일까. 사내들의 싸움을 보지 못했던 미란에게는 별안간에 벌어지는 그 한 장면이 진저리가 났다. 공격하는 갑재와 당하는 영훈은 별것 아니라 야만과 문명과의 대립이었다. 야만의 힘이 눈으로 보기에는 항상 사나운 것이어서 그만큼 그 대립의 꼴은 보기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미란은 마음이 아파지면서 그런 꼴을 보게 된 것을 불행히 여겼다. 그날은 흡사 싸움의 날 같아서 집에서 단주와 다투고 나오자 또 그 정경이다. 그러나 사내끼리의 그 싸움에 비기면 단주와의 옥신각신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 그만큼 미란이 받은 충동은 컸다.
“해결의 방법으로 이렇게 빠른 건 없거든. ――강다짐이든 무어든 맹세를 받을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야.”
“완력으로 해서 이긴다구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건 없어, 맘껏 해보렴.”
“맘만 살아서 힘이 얼마나 장하다는 걸 모르구…….”
무서운 짓이었다. 갑재는 참으로 자기의 힘을 자랑하는 듯 육중한 몸으로 영훈을 깔아 버린 것이다. 영훈은 창 기슭에 머리를 뉘이고 내려 덮치는 힘을 막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나 조련히 그 힘을 물리칠 수 없을 뿐이 아니라 바위 밑에 눌린 자라같이 일신이 괴로워 가고 급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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