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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더하게 한 것은 그 일이 있은 이튿날 영훈의 자태가 사라졌음이다
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55>
[589호] 2017년 09월 29일 (금)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미란과 가야는 그런 급한 경우에도 어쩌는 수 없이 한참 동안이나 주먹만을 쥐고 서 있는 수밖에는 없었으나 참으로 경우가 긴급해졌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새우들 싸움에 한몫 참가하게 되었다. 갑재가 여전히 부락스럽게 힘을 쓰는 바람에 깔린 영훈은 멱살을 들리운 채 열린 창밖으로 머리가 밀려나간다. 창밖은 바로 뒷골목 거리로서 이층이나 땅 위까지는 눈이 한참 내려간다. 갑재는 흥분된 판에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는 것이요, 영훈의 몸은 한마디 거역도 없이 점점 밀려나가고 있음을 볼 때 가야와 미란은 무언중에 반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미란에게 대해서 갑재는 대체 무슨 뜻을 가지는 것일까. 내 편도 아니거니와 원수도 아닌 것이다. 가야의 존재를 의식에 둘 때 원수라기보다는 되려 그 반대의 것이 아닐까. ――이런 반성이 있을 겨를이 없이 가야가 화병을 들고 나섰을 때 미란은 엉겁결에 보면대의 니켈 몽둥이를 집어들고 가야와 합력해서 갑재의 뒤통수를 겨누었던 것이다. 영훈의 몸을 빼려면 갑재의 힘을 깨트리는 수밖에는 없었고 여자의 손으로서는 물건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모질게 얻어맞고 의외의 강적의 출현에 놀라 흘끗 돌아 본 갑재는 그 분풀이를 영훈에게 하려는 듯 더욱 사나워 갔다. 미란과 가야는 이어 교자와 책들을 집어 들고는 갑재를 박살해 버리려는 듯 후려 갈겼다. 요행 공을 이루었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영훈의 몸은 일순에 창밖으로 떨어졌을는지 모른다. 갑재가 흠! 소리를 치면서 휘전휘전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두 여자는 달려들어 영훈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충혈된 얼굴이 홍당무같이 발갛고 눌리었던 목은 숨이 차는 듯이 맥이 쇠진한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전 전 무어라구 할말이 없어요.”
가야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고 미란도 목안이 달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싸우고 난 두 사내의 승패는 대체 무엇이었던가. 함께 쓰러져 버리고만 두 사람을 둘러싸고 미란과 가야는 애닯고 슬펐다.
승패는 상반이라고 하더라도 육체의 힘에 농락을 당한다는 것이 모욕 중에서도 얼마나 큰 모욕인가. 세상에서 싸움하는 꼴같이 그것도 한편이 기울어져 가는 꼴같이 보기 흉측하고 참혹한 것은 없다. 몸서리가 치고 진저리가 나는――그보다도 더 추한 광경은 없을 성싶다. 면상을 짓찟기고 힘에 굴욕을 당하고 있는 영훈의 모양을 볼 때 미란은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달아지고 귓불이 빨개졌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제일로 치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영훈의 감정을 그 모욕이 얼마나 상하게 하고 아픈 상처를 주었을 것인가. 활촉에 날개를 상한 비둘기같이 얼마나 면목이 없고 가슴이 떨릴 것인가. 생각할수록에 슬픈 일이었다. 다행으로 싸움이 거기에서 그쳤게 말이지 갑재가 폭력을 더 써서 목숨에까지 불행한 결과를 끼쳤더면 무슨 꼴이었을까 생각할 때 미란은 그날을 흉한 날이라고 거듭 느끼게 되었다.
결말 없는 싸움이 공연히 각 사람의 가슴속에 상처만을 남기고 그중에서도 미란에게 특별히 한 고패의 슬픔을 더하게 한 것은 그 일이 있은 이튿날로 돌연히 영훈의 자태가 거리에서 사라졌음이다. 연구소와 학교는 물론 거리의 웬만한 곳을 샅샅이 들쳐보아도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것이었을까. 한마디의 말도 없이 사라졌다. 싸움에서 받은 부끄럼이 그렇게도 컸던가. 며칠 동안의 간단한 여행을 떠난 것인지도 모르기는 하나 한편 행여나――하고 불길한 예측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기는 학교도 이미 여름 휴가를 잡아든 것이므로 피서를 겸해 그 기회를 타서 산속이나 바닷가에 가있음직한 것이 가장 적당한 추측인 것이요, 미란은 그러기를 마음속에 원해도 보았다. 영훈이 거리에 있을 때에는 마치 책상 위에 늘 놓여 있는 화병같이 기쁘기는 해도 심드렁하던 것이 일단 그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에게 대한 생각이 간절하게 솟아올랐다. 이제는 벌써 한 사람의 스승에 대한 사모가 아니요, 그 이상의 애끊는 그리움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도 건반의 한구석이 떨어진 것 같은 헛헛한 회포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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