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들여서
정성을 들여서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10.27 13:43
  • 호수 59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

외국에 비싼 돈 들여 연수가서는
대충 둘러보고 정보공유도 안해

해외연수도 철저히 준비하고
장애인 위한 경사로 공사도
정성 다하는 일본 본받아야

지난 여름 독거노인으로 심심하게 지내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일본 북해도에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과거 학술회의 참석 차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깨끗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의 안내원이나 매점 판매원 같은 사람들도 친절하고 자기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다.
북해도는 서구의 어느 중소도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숲과 바다의 관광자원을 잘 개발해놓고 있었다.
오래 전 자원봉사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연구자 몇 명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자원봉사를 발전시킨 일본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일본은 도도부현 사회복지협의회가 중심이 되고 학교와 기업이 협력해 자원봉사를 실행하는 매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원봉사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전시켜 보려는 시점에 있었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자율적인 행동이지만 우리도 이런 체계를 개발하면 훨씬 효과적인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썼지만, 그 후 우리나라의 자원봉사는 매우 비체계적으로 추진돼 아쉬움이 많다.
그런데 일본 자원봉사 현황에 관해 우리에게 브리핑을 해준 동경 사회복지협의회 직원의 말은 내 뒤통수를 세게 갈기는 것 같은 질책이었다. 자원봉사체계라는 똑같은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최근 한국에서 여러 그룹이 방문했는데, 한국에서는 관계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누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도 없어 대충 얼버무리고 낯 뜨겁게 돌아온 적이 있다.
북해도 여행 후, 어느 일간 신문에 난 기사는 이 창피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기사의 내용은 핀란드 교육현장이 한국 교육가들에게 인기가 높아 한국 연수단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20〜30차례에 걸쳐 교사와 공무원 수백 명이 핀란드를 방문하지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판박이 연수’라는 점이다.
북유럽 몇 나라를 방문하는 7박9일짜리 교육 연수는 2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으로 연수단을 구성해 한 나라에 이틀 정도 머물면서 하루는 간담회와 수업참관, 또 하루는 문화탐방을 하고 돌아간다. 즉, 대충 보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연수단은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돼 한 가지 주제로 깊이 있게 토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사와의 간담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던 한 핀란드 교사는 “한국 선생님들은 매번 똑같은 걸 물어본다. 한국에 돌아가면 연수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하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연수단이 한번 다녀가는 데 최소 수천만 원이 드는데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여행사에서 짜도록 일임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한국에서 오는 고만고만한 연수단의 방문이 이어지자 핀란드 학교와 교육위원회 등은 이제 방문료를 받기 시작했다. 두 시간 방문에 190만원!
이에 비해 일본 교사들도 핀란드 학교를 자주 방문하는데 연수 모습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 연수단 규모가 10명 안팎으로 작고, 핀란드에만 최소 1주일에서 한 달을 머문다. 연수단을 동질 그룹으로 구성해서 교사, 행정가, 의원들끼리 방문하고 방문할 교육기관에 질문거리를 미리 보내 그쪽에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연수 주제를 철저히 예습해서 오고, 연수 와서는 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한다는 것이다. 때론 몇 명이 1〜2학기에 걸쳐 보조교사로 일하며 교육현장을 밀착해 들여다보는 장기연수 프로그램도 실시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전공자로서 내가 일본에 가면 유심히 보는 게 하나 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인도를 비스듬하게 깎은 경사로를 보면 차도와 인도가 맞닿는 부분이 땅 바닥에 정확하게 딱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시나 시골이나 거의가 다 그렇다.
높이에 차이를 두는 경우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단다. 미국과 유럽에 가면 맞춘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경우 잘 맞춰져 있지 않다. 오래 전 내가 사는 동네에 경사로 공사를 하는 인부가 그 부분을 대충 하는 것을 보고 지적을 했더니, 구청에서 이렇게 공사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 뭘 그렇게 신경 쓰느냐는 투의 응답이었다. 소위 장인정신까지는 들먹이지 않는다 해도 경사로를 왜 만드는지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것을 ‘코코로오 코메테’(心を込めて, 마음을 다해서 혹은 정성을 들여서)라 한다. 관광지 매점의 판매원이나 도로 보수를 하는 인부, 혹은 해외 교육연수를 가는 교사나 행정가 모두가 정성을 다해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일본은 참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두 나라간 외교에 있어서 마찰이 있고 역사를 왜곡하는 괘씸한 놈들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업무와 직위를 불문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의 정신은 때로 무섭기까지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