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고팠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기고]배고팠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 이철규 명예기자
  • 승인 2017.10.27 13:44
  • 호수 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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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최근 강원도 양양에서는 국군의 날을 기념해 ‘양양수복 38선 돌파기념 시가행진’이 펼쳐졌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1945년 6월 25일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 괴뢰군의 기습 남침으로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려 한반도는 적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유엔군이 참전했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그 기세를 몰아 10월 1일에는 국군 3사단 23연대가 양양 38선을 돌파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된 것이다.
이날 진행된 시가행진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인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80~90대 어르신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서러움을 겪었고 한국전쟁 참전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어르신들을 보니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쟁은 참으로 비참하다. 부모와 형제들이 안타깝게 이별한 슬픔이 아물기도 전에 누더기를 입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질서의 붕괴로 도둑과 주먹이 난무해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서러움은 배고픔이었다. 정말 먹을 게 없어 풀과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 시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있던 것 일뿐 실제로는 산송장이었다고 한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서러움의 시기를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 이웃 간의 정 때문이었다.
필자 역시도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소년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이후 전쟁으로 인한 기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3년간의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도 가장 큰 고통이 배고픔이었다. 보리밥에 콩나물국이 전부였다. 다른 반찬은 꿈속에서나 보는 그림일 뿐이고 간식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배는 고팠지만 빵 한쪽이라도 나누려 했던 전우애가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어려움의 대가인지는 몰라도 이제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 병사 월급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식사 역시 영양을 고려한 식단으로 편성돼 있다. 굶주린 사람들도 현저히 줄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건강보험제도를 잘 갖췄고 이로 인해 적은 비용으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그만큼 평균수명도 길어졌다. 필자가 살아온 세월 속에 이만큼 좋은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예전과 달리 이기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경향이 팽배해지고 있다. 배고팠지만 인정은 넘쳤던 그 시절의 마음들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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