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자를 찾아서]부모처럼 어르신 모시는 ‘일등 효부’
[효행자를 찾아서]부모처럼 어르신 모시는 ‘일등 효부’
  • 이미정
  • 승인 2007.10.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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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지회 이 계 자 총무부장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효행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시대에서 우리 윗세대들이 보여주었던 효심과 달리 요즈음은 효에 대한 개념이 바래고 퇴색된 것이 시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깊은 효심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며 사회를 밝게 하는 많은 효행자들이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전국의 효자, 효녀, 효부들을 만나 효행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효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합니다.

20여년을 성치 않은 장애인의 몸으로 치매 시아버지를 모시고 시동생들까지 돌보면서 현재는 노인회 지회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가 있어 칭송이 자자하다.


주인공은 바로 대한노인회 충남 논산시지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계자(43·사진) 총무부장.


이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만 장애 4급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이씨는 어려운 가정살림 그리고 3대가 같이 사는 대식구의 식사도 아침, 저녁으로 3번씩 준비하면서 딸기농사, 배추농사, 벼농사를 지어가며 하루하루 허리 펼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


슬하에 아들 2명을 낳고 잘 살아가던 중 6·25참전용사였던 시아버지의 치매증상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아픔의 시작이었던 걸까. 첫 아이를 낳고 “나도 엄마가 되었구나”라는 기쁨도 잠시 지난 2002년 친정어머니가 쓰러지고 신랑마저 교통사고로 수술을 7번이나 하게 됐다.


다행히 당시 지회에 출근하며 틈틈이 병간호를 해 친정어머니와 남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상태지만 친정어머니에 이어 친정아버지마저 쓰러지면서 아버지는 하늘로 보내 드려야 했다.


시집와서도 10년 동안 틈틈이 농사도 봐드리고, 친정 부모님 집안 살림을 돌봐 드리던 이씨다. 하지만 이씨는 “그래도 주말이면 찾아뵙고 밑반찬과 약을 챙겨드릴 수 있는 친정어머니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워낙 20여 년 동안 치매가 심했던 시아버지가 지난해 여름에 또 쓰러지셔서 몇 달을 중환자실에 계셨다”면서 “날로 야위어 가는 시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6·25전쟁 당시 시아버지는 고향인 충남 금산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신데 동료들은 다 죽고 혼자 살아 돌아오신 기억은 조금 한다”고 말했다.


1999년 논산시지회에 입사한 이씨는 “어르신들이 하시는 억지도 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어르신들 가까이서 생활하는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다”면서 “지회에 근무한 10여년 동안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효도로 봉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현죽재단과 대한노인회가 시상하는 ‘현죽 효행상’의 영예를 수상하기도 했다.


 정재수 기자 jjs@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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