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노인과의 대화 “마음부터 열어라”
[활기찬 노년생활]노인과의 대화 “마음부터 열어라”
  • 이미정
  • 승인 2007.10.12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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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정 내거나 토라지면 대화 끝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주부 강모(52)씨는 “시어머니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린다”며 여고동창생인 친구와 1시간이 넘는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시아버지 별세 후 세대를 합쳐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강씨 가족. 매번 골치를 아프게 하는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다.


강씨의 시어머니는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데 이번엔 온천 여행을 갔다가 덜컥 고가의 건강보조제품을 사들고 왔다. 묵고 있던 온천장에 건강식품 전문업체 직원이 특별히 나와 노인건강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여러 가지로 몸에 좋다고 해서 사들고 왔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보는 순간 강씨는 짜증이 일었다. 추석이다, 재산세다 해서 지난 달 적자를 메우려면 70만원 이상이 필요한데 시어머니는 한마디 상의없이 물건을 사들고 와, 우편으로 지로가 오면 돈을 내라고만 하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머니 사시기 전에 제게 전화 한번만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시어머니는 안색이 달라졌다. “이날 이때까지 아들 키우며 늙었는데 이 정도도 내 마음대로 못하냐?”며 분기탱천해 덜컥 방문을 닫아걸고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며 며느리가 방문 앞에서 전후사정을 이야기해도 들은 체를 하지 않는다.


경기 부천시 범박동에 사는 한모(55)씨는 팔십이 넘은 아버지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재작년 실직을 해 아내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자신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철없는(?)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반찬 타박, 계절이 바뀌면 옷 타박이다.


“아버님 좀 잘 모셔”라며 아내에게 말은 하지만, 아내의 상황이 아버지 입맛에 맞춰 반찬 장만하고 옷 사다 챙겨 드릴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만족하진 않지만, 그만하면 할 도리는 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고생만 시키는 아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는데, 아버지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며느리가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투덜거린다.


그 날도 부친은 “입에 맞는 반찬이 없다”며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순간적으로 한씨는 “아버지 저만 자식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자식한테 가세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바로 토라져서 집을 나갔다. 다른 자식 집으로 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아, 온 식구가 노인네를 찾아 헤매고 다녀야 했다.


노인들과 함께 살며 애로를 겪는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 마디로 노인들과 대화가 안 된다는 것. 자초지종이나 상황을 설명하려면 역정부터 내거나 왜곡해서 듣기 때문에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기력이 쇠퇴하고 인지능력이 저하되며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높아지면서 진취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마음이 되기 쉽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사색의 폭을 넓히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마음의 문을 넓히는 쪽으로 순환돼야 하는데 그 반대로 순환될 경우엔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노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노인심리를 이해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사전에 알리거나 부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혹시 ‘노’라는 대답을 듣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어르신들은 ‘노’라는 답을 듣게 되면 아들이나 며느리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괴로워한다.

 

사실 아들이나 며느리는 부모님이 부탁한 내용을 거절한 것이지 어르신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허락을 구하거나 부탁하는 자체를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 피할 수도 있다.


노인과 대화할 때는 불안, 불신, 좌절, 절망감, 분노, 조바심, 상실감, 균열 같은 단어들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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