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예방 무료접종, 기다리다 지쳤다
독감예방 무료접종, 기다리다 지쳤다
  • 정재수
  • 승인 2007.10.2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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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인구 따라 접종일수 조정·시간지정 등 대책 시급

10월 24일 서울 관악구 신림11동 한 교회에 마련된 예방접종 대기소에서 의자를 얻지 못한 두 어르신이 책상에 걸터앉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1

10월 24일 오전 9시 서울 강서구보건소. 10월 8일부터 전국적으로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독감예방접종이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강서구보건소 입구에는 접종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확성기를 든 한 보건소 직원이 바삐 오가며 어르신들을 정렬시키고 있었다.

강서구의 경우 접종 장소가 보건소로 한정됐다. 이 지역 어르신들은 10월 8~26일 각 동별로 지정된 날짜에 보건소에 직접 나와야 했다.

지팡이를 짚고 나온 최충숙(80·여) 어르신은 “오전 8시 집을 나서 화곡6동에서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 도착해 1시간 30분쯤 기다렸다”며 “불편해도 감기 걸려 죽지 않으려면 나와야지…”라며 씁쓸하게 말끝을 흐렸다.

강서구 방화3동 문종명(82) 어르신은 “예전에는 보건소 직원들이 동사무소나 경로당에 나와 접종해주더니 언제부턴가 무조건 보건소로 나오라고 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접종을 아예 포기하는 노인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2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신림11동의 한 교회. 신림11동 접종장소로 지정된 이 교회에도 어르신 200여명이 모였다. 관악구는 그나마 나은 편으로, 보건소 직원들이 각 동에 마련된 접종장소를 순회하며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었다.

교회 입구에서는 동사무소 직원들이 어르신들께 대기 번호표를 배부하고 있었다. 예방접종이 예정된 오후 2시, 순번은 벌써 330번을 넘었다.

한 동사무소 직원이 “어르신들이 대기하지 않도록 지난해부터 대기 번호표를 나눠드리고 있다”며 “오늘 250번 이후 번호표를 받은 어르신들은 오후 3시 30분 이후에 오시도록 댁으로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기표를 받고 돌아서는 어르신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오후 1시쯤 교회에 도착해 기다렸다는 김영호(72) 어르신은 “몸도 성치 않은 노인들에게 이렇게 오라 가라 해도 되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1~100번대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는 교회 식당에서도 어르신들과 동사무소 직원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접수대로 사용할 책상배치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자 이미 2시간 가까이 기다린 어르신들의 원성이 폭발, 10여분 동안 고성이 오고간 뒤에야 접종이 시작됐다.

올해 서울 관악구보건소는 국비와 시비, 구비 2억175만원을 들여 이 지역 65세 이상 어르신 4만469명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대기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10월 8~26일 오전과 오후 각 동별로 순회 접종하고 있지만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대전서 80대 어르신 대기줄서 쓰러져 응급실 실려가

지난 10월 17일 대전 중구보건소에서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대기 줄에서 기다리던 86세 손모(중구 산성동) 어르신이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보건소 직원들에 의해 급히 충남대 병원으로 옮겨지기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감예방접종을 관장하는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팀 최원석 선임연구원은 “독감예방접종은 10~12월 3개월 동안 실시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올해 전국 251개 보건소에서 65세 이상 345만명의 어르신들을 비롯해 총 1600만명이 짧은 기간에 접종을 끝내야해 불편이 초래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예방접종은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되고, 보건소 등 의료기관에서만 실시하도록 규정돼 1999년부터 순회(단체)접종을 지양토록 각 보건소에 권고하고 있다”며 “단체접종을 실시할 경우 예방접종의 질적 저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어르신들의 불편이 초래되고 있어 매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노인인구에 따라 접종일수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아예 순번표를 미리 발송, 개인별로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 접종하는 방법도 적극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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