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시인 김지하
[인물포커스] 시인 김지하
  • 정재수
  • 승인 2008.01.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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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사랑방 ‘마고’ 열고 ‘이야기가 한류의 콘텐츠다’ 역설

동북아 3국에 21세기 신르네상스 징후, 한국이 이끌어 간다 
한국인 예술적 감수성, 이천년 신바람, 1천회 침략 받은 한  


보수적인 어르신 독자에게 김지하 시인은 친근하지 않다. 그 이름이 민주인사,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일컬어질 때는 더욱 그렇다. 사회비판 시 ‘오적(五賊)’을 써서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 이른바 민청학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된 경력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한국의 사상사에 또 하나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동안 그가 천착해온 생명사상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예술작품이 부지기수로 만들어졌다. 최근 광화문 포럼 강연에서 ‘문화가 새 시대 돌파구’라고 역설하기도 한 김지하 시인을 창덕궁 옆의 이야기 사랑방 ‘마고’에서 만나 노인들의 시작활동, 문화활동, 예술미학에 대해 들어봤다.

 

코스모스
                  김사인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설명: 이제 노년이 된 김지하 시인이 젊은 세대와의 소통과 ‘이야기가 콘텐츠다’라고 주장하면서 서두를 삼아 소개한 시다. 집 나가 사는 자식의 애틋한 부정이 잘 나타나 있다.


저항시를 쓴 시인, 민주인사로서의 생애보다 생명사상을 천착하고 설파한 세월이 더 오래이기 때문일까 그는 이제 사상가적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지난 1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화문 포럼에서도 각계의 저명한 인사들을 상대로 그런 내용으로 강연했다. 언론은 ‘문화가 새 시대의 돌파구’라고 한 김 시인의 말에 무게를 실었다. “새 시대에는 문화 강국으로서의 창조적 비약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시인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김지하 시인은 “새로운 르네상스의 징후가 보인다”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학문과 유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던 15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우리도 주몽시대와 광개토대왕 시대, 영정조 시대의 문화유산에 대해 과감히 재해석하며 동북아시대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인으로써, 이야기 시를 쓴 사상가로서 예술론에 대해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 전통적 가치를 지금 왜 중시하는가. 그리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얘기다. 사회가 고령화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웬만큼 조심하면 백 살 이상 산다고 본다. 경제형편과 의료 환경이 좋아지고 취업 연령도 늘어난다. 오래 살면 결국 찾는 것이 무엇인가. 소모적인 것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 문화적인 것이 오래 간다.”


- 장수하는 시대에는 일하는 즐거움도 크다.

“노인들에게서는 완숙성,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다. 도자기 같은 수공업적인 예술계통에서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 전통 테크닉과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그런 일은 얼렁뚱땅 만들어낸 비정규직 일자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 백세시대이 어르신 시 공모를 하고 있다. 시인이시니 어르신문화활동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가해 주신다면.

“거기에 시조를 넣었으면 좋겠다. 어르신들한테는 시조가 좋다. (시조도 같이 모집하고 있다고 하자) 음보, 리듬이 양식화 되면 여러 가지 현대적 변화와 재해석을 통해 다양한 모색을 해볼 수 있다. 초·중·장으로 나누는 양식이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형식이 존중되면서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이 형식은 바이오 리듬, 혹은 생명의 약동과 같다.”


- 시낭송도 그 점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좋다. 어르신들이 10명, 15명 정도씩 모여 이야기하고 시 암송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요롭겠는가. 그런데 요새 시낭송이 잘못 됐다. 과장된 감정으로 그렇게 낭송하는 것은 우리말 체계와 맞지 않다. 국적 불명의 것이다. 우리는 음유, 음송시가 있다. 넉자배기나 육자배기같이 자배기와 정가(正歌)가 있다. 그것은 귀족만의 것이 아니라 농민 중인도 즐기던 것이다. 이제 와서 왜 옛날 것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건 젊은이들도 두줄배기 석줄배기라고 해서 최근 문단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 전국의 경로당, 노인대학, 노인종합복지관, 시·군·구 자치단체문화원의 실버문화학교에서 시 동아리모임이 만들어진다면 풍요로울 것 같다.

“시가 중요한 이유는 예술행위에 있어서 변화가 올 때 첫 번째 안테나가 시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나 선생님들도 시가 중요하다. 그런데 하물며 어르신들의 예술적 감성이 아닌가. 어르신들이 용돈이나 타서 파고다공원 근처에서 있다 가는 것보다 그게 좋다. 시를 배우고 젊은 사람들의 문학과 연결도 해본다면 얼마나 젊어지겠는가. 노인세대가 이런 실버문화를 의식적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 지난 번 광화문 포럼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무슨 말인지.

“우선 미국 영화의 심장부인 할리우드에 스토리 고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가 풍부하다. 할리우드에서 우리 이야기를 가져다가 리메이크하는 것이 그런 반증이다. 이야기는 어르신들한테 풍부하다. 내가 보기에는 미학원리가 두 갈래인데, 하나는 막 즐겁게 노는 것이고. 하나는 노동과 관련된 부분이다.”


- 한과 신명이라는 두 가지 우리 민족의 예술적 감수성을 말씀하시는데.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근 한달 동안 연인원 700만명이 움직였다. 그런데 아무런 사고, 폭력사태도 없이 질서 정연했다. 길거리 청소를 할 정도였다. 세계에 이런 경우는 없다. 중국 기록에 보면 영고, 동맹, 무천 같은 고대 축제 때 사흘 밤 낮을 춤추고 노래 불렀다고 한다. 이게 뭔가. 남녀노소가 신기가 동하고, 신명이 나고 신바람이 나서 그런 것이다. 이 신바람이 예술적 감수성의 하나다. 그런데 1000여 번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서 이 신기가 억압됐다. 그래서 예술 창조 동력으로 한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슬픔, 어두움, 우울증이 그것이다. 예술의 큰 감수성의 두 군데를 들으라 그러면 한과 신명이다. 2002년의 그것은 신기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해서 나타난 것이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한류상품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한테 많다.”


- 이곳을 이야기 사랑방이라고 칭하는 이유도 그런 뜻인가.

“그렇다. 이야기란 반드시 집을 떠나면서 모험을 하고 깨우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평균 유형이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어르신들이 다 잘한다.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 도처에서 하고, 인터넷에서도 한다면 노인문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이야기가 콘텐츠다. 우리 어르신들은 일제시대를 겪고, 육이오를 겪었다.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여 죽이고 죽은 이야기도 다 풀어버리자. 종교적인 이야기도 좋다. 수련할 때라든가, 예수나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이야기도 좋다. 그래야 노인들이 사회에서 쓸모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어르신들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


- 이야기는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김사인이라는 후배 시인이 있다. 그 친구가 ‘언제 한번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한테 그동안에 슬펐던 세상 이야기를 다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읊은 대목이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란 그런 것일 게다.”


-그동안 편찮으셨던 것으로 안다. 이젠 회복되신 것인가.

“무릎을 수술하다가 왼쪽다리가 짧아졌다. 디스크 비슷하게 되고 그랬다. 지팡이 짚고 다니고 그랫는데 지금 좋아졌다. 뜸을 뜨고 침을 맞고 해서 많이 좋아졌다. 이 뜸과 침이 참 효과가 있다. 의료법상 말하기 애매한데 우리가 종주국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 같은 데서도 굉장히 호기심을 갖고 있다.”


-연로하신 어머님과 장모님이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이 생존해 계신다.

“두 양반이 다 몸이 안 좋으시다. 어머니는 원주에서 치료받고 계신다. 장모님은 아파도 글을 쓰고 계시는데 가끔 가서 뵙는다.”


-마고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이야기하는 곳이다. 밤에 출출하면 소주 마시고 이야기하는 그런 문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르네상스의 첫발자국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시작이다. 물론 두고 봐야 한다.”

박병로 기자 roparkk@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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