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붕을 헐고 2층을 올린 이유
[기고]지붕을 헐고 2층을 올린 이유
  • 류성무 수필가 김천 가메실경로당 회장
  • 승인 2017.12.15 11:26
  • 호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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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정이 생겨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에게 방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임신 중이었던 임차인은 우리 사정을 이해했는지 그 길로 방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첫째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문을 들어서는 임차인과 마주쳤다. 비워달라는 통보는 아내가 전달했기에 그 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셋방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해 힘들다고 했다. 임차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났다. 
1960년대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아서 집을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경북 상주에서 박봉의 공무원으로 일했던 필자도 겨우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의 임차인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아내가 막내를 임신했는데 마침 주인집에서도 아이를 가진 것이다. 더군다나 출산예정일도 비슷했다. 당시만 해도 산부인과가 없어서 집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한 집에서 두 사람이 같이 출산을 하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었기에 주인집에서 방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아내 역시 방을 얻으려고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예정일이 가까워졌지만 도통 방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 일이 터진 것이다. 그날따라 느낌이 이상해 일찍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부엌에서 자리를 펴고 있었다. 진통이 와서 여기서라도 아이를 낳기 위해 준비중이라는 말과 함께.
방이 아닌 부엌에서 낳기만 하면 ‘한지붕 동시 출산’은 안 된다는 미신을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가마솥이 있는 흙바닥에서라도 아이를 낳겠다는 아내를 보면서 필자는 무능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 했고 미신이라 해도 주인집에 부정을 끼칠 수는 없었기에 아내를 자전거에 태워 근처에 살고 있던 누님집으로 향했다.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무사히 출산을 했고 그 아이가 올해 지천명을 넘겼다.
안타까웠던 기억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산달이 가까운 산모에게 계속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임차인이 현재 살고 있는 방에서 그대로 살게 할 수도 없었다.
아내에게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붕을 헐어 내고 한 층을 더 올리기로 한 것이다. 큰 공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허가를 받아야 했고 세금도 더 내야 했다. 얼마간의 진행된 공사가 끝난 후 임차인을 2층으로 옮기도록 했고 그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이 울음소리가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잠을 설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겨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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