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허물을 영훈에게 말함이 옳을까 안 함이 옳을까 미란은 괴로워졌다
지난 허물을 영훈에게 말함이 옳을까 안 함이 옳을까 미란은 괴로워졌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12.22 11:23
  • 호수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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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66]

무덥고 피가 끓고 혼몽해지면서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사랑이란 것인가――생각하면서 비로소 훌륭한 세상을 안 듯도 싶었다. 흡족하고 자랑스러우면서 간들바람을 맞는 육체가 상쾌하고 거뿐했다. 그 자랑스럽고 훌륭한 것을 받기에 자기의 몸이 부족하고 부적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솟았다. 결코 작은 걱정이 아니었다. 문득 마음속에 돋아났던 것이 마치 흡수지 위에 퍼지는 잉크방울같이 볼 동안에 활짝 퍼지면서 구름장같이 마음을 덮었다. 그 걱정이란 자기 몸의 허물과 관련되는 것이었다. 허물 있는 몸으로 그가 주는 맑은 행복을 받는 것이 그를 농락하는 것이 아닐까 느껴지면서 단주와 무의미하게 저지른 지나간 하룻밤 일이 무서운 채찍같이 몸을 매질하는 것이다. 몸이 맞도록 지울 수 없는 영원한 흠집이 이제 와서 마음을 여위고 몸을 저밀 결과가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그 지난 허물을 영훈에게 말함이 옳을까 안 함이 옳을까, 말함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체 그런 것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생각할수록에 마음이 섞갈려지고 괴로워지면서 행복이 금시 불행으로 변해지는 그 조화에 두려운 생각이 났다.
“사랑에는 열정과 정성만으로 족한 것일까요.”
오물하고 있던 질문을 선생 앞에 던지는 아이 같은 그의 태도를 영훈은 찬찬히 바라보면서,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자격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격이라니요.”
“바다를 건너 외국에 들어갈 때에는 왜 신체검사가 엄중하지 않아요――몸이 허약하지 않은가, 병을 가지지 않았나 하는.”
“몸이 허약하다구 사랑에 부적당하다는 법이 세상에 있나요.”
하필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드는 까닭에 미란은 어떻게 설명했으면 좋을지를 몰랐다.
“제겐 암만해두 자격이 없을 듯해요.”
“난 외국의 세관 관리두 아니구 이민단의 검사원두 아니거든요.”
“당장에서 눈을 감았다가 나중에 알리는 경우에는 뉘우침이 큰 법예요.”
“난 나중두 모르구 과거두 모르구 현재만을 사랑해요. 과거에 병이 있었든 마든 미래에 병이 생기든 마든 그것이 무엇입니까. 현재의 열정과 정성을 버리구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적어두 사랑에 있어서는 난 그런 태도를 가지는 사람예요.”
“전 점점 죄나 져 들어가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병적인 망상이죠.”
“그럴까요.”
하면서도 미란의 걱정은 일반이다. 영훈은 자기의 말하는 속뜻을 확적히 알고 하는 소리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비유를 그다지 큰 것으로 잡지 못하고 막연한 것으로 그릇 알고 말함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말한 것은 막연한 추상이 아니고 무서운 구체였다. 구체를 말함에는 불가불 비유를 쓸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 비밀과 곡절을 영훈은 참으로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걱정에 넘치는 마음은 영훈의 간곡한 태도의 표시로도 쉽사리 누그러질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영훈을 사랑하는 마음은 억제할 수 없도록 솟는 것이었고 열정이 넘치면 넘칠수록에 자책의 마음도 더욱 솟았다. 그렇다고 그 후로 영훈이 번번이 요구해 오는 애정을 물리칠 수 없었던 것도 물론이요, 그것을 알뜰히 받아들일 뿐이 아니라 일층 바라면서 그 속에서 모든 반성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피서라고는 해도 산을 헤매고 물속에 잠기고 꽃을 보고 바람을 쏘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요, 별장에서는 그 단조한 일과에 맥이 나게 되고 더구나 긴 밤은 파적거리가 없이는 지내기 어려웠다. 객실에 우두커니 모여들 앉으면 조그만 포터블에 몇 장 가지고 오지 못한 레코드로 싫증이 나서 트럼프를 놀아 보았다 화투를 쳐보았다 고심들을 하고 시간을 지우기에 노력들을 하는 형편이었다. 심심한 속에서 영훈은 밤에는 더욱 귀하고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화투를 놀든지 음악을 듣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는 필요한 한몫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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