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선보이는 황혼의 열정
무대에서 선보이는 황혼의 열정
  • 이미정
  • 승인 2008.02.16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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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러브’ 2월 24일까지


<가로사진>황혼의 사랑 그린 뮤지컬 ‘러브’ 공연 모습.
 

“당신이 자는 동안 지켜봐 주고, 당신이 깨어 있는 동안 따라다니고… 난 이 세계에 오직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보내진 것을 이제 알겠소.”


지난 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러브’ 대사 중 일부.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면서 황혼의 연애담을 펼쳐낸다.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지만 설레는 감정과 애틋한 마음은 첫 사랑과 다를 바 없다.


뮤지컬 ‘러브’는 요양원을 무대로 삶의 끝자락에 선 어르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등장인물 19명 가운데 주인공 니나의 아들과 간호사를 제외한 17명이 모두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어르신들. 나이 든 배우가 드문 뮤지컬계에서는 보통 젊은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노인 배역을 맡지만,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주인공에서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실제 나이가 60~70대인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젊은 배우들과 달리 머리를 희게 칠하거나 가발을 쓸 필요도 없고, 얼굴에 주름을 그려넣을 필요도 없다.


어딘지 서투른 듯 한 춤 동작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엉거주춤한 어르신들 특유의 걸음걸이가 극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흐르는 올드팝의 선율은 관객들이 따라 흥얼거릴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번 공연에는 김진태, 이주실, 전양자 등 낯익은 중견 배우들도 출연하지만, 오디션을 통해 뽑힌 일반이들이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해 ‘늦깎이 배우’로 데뷔한다.


스케피 역을 맡은 이윤영 할아버지는 출연자 중 최고령. 젊은 시절 형사반장으로 활약했던 그는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배우로 뽑혀 77세의 나이에 무대에 데뷔했다.


사실상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그는 “20대로 되돌아간 기분”이라며 어린아이처럼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연기하면서 삶에 활력이 생겼어요. 요즘엔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무릎 아픈 것도 없어졌다니까요. 이번 공연을 통해 집에서 손주 보면서 지내는 내 또래 동료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고 싶습니다.”


일선에서 은퇴하고 자식도 모두 출가시킨 권영국(68)ㆍ윤미남(63) 부부는 함께 작품에 출연하면서 황혼의 금슬을 과시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기도 한 권씨는 “유명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돼 너무 설레고 기쁘다”면서 “젊은 시절 못 다 이룬 배우의 꿈을 이제야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스물 다섯 곡이나 되는 노래 가사를 외느라 정말 힘들었다”면서 “잠 잘 때 빼놓고는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할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성악을 전공했던 한정실씨는 이 작품에 출연하면서 몸이 아파 그만뒀던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말없이 무의미하게 웃는 표정을 지은 채 공연 내내 무대를 계속 지켜야 하는 역이에요. 처음에는 근육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힘들었죠. 과연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해냈네요.”


주인공 요니 역을 맡은 김진태씨는 “무대에 처음 서는 어르신들이 전문 배우들보다 더 열의를 갖고 연기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오히려 배웠다”면서 “무대에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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