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에쿠우스’ 소년은 왜 말의 눈을 찔렀나
연극 ‘에쿠우스’ 소년은 왜 말의 눈을 찔렀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3.16 13:23
  • 호수 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대표 극작가 피터 쉐퍼 작품… 인간의 성과 욕망 다뤄

지난 3월 13일, 서울 대학로 티오엠 1관 무대에 전라의 두 배우가 등장하자 객석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굿간에서 17세 소년 ‘알런’과 그의 연인 ‘질’이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 알런이 돌변한다.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던 ‘무언가’의 환청을 들은 그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의 눈을 하나씩 찌르는 광기를 내뿜는다. 평범한 소년이 잔인무도한 행위를 벌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스타를 탄생시키며 대학로 대표 연극으로 자리잡은 ‘에쿠우스’가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돌아왔다. 에쿠우스(Equus)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대표 극작가로 불리는 피터 쉐퍼(1926~2016)의 대표작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탄탄한 전개와 인간과 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잠재된 욕망을 그린 치밀한 구성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은 말의 눈을 찔러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 날 알런은 아무 이유 없이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찌르고 이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된다. 판사는 알런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만류하고 다이사트에게 그를 보낸다. 알런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닌 ‘치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담 경험이 풍부한 다이사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알런과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다이사트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이 있었다.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에 회의감을 갖고 있던 것.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아이들을 희생제물 삼아 제사를 치루는 악몽을 꿀 정도로 그는 정신과 상담이 올바른 것인지 물음표를 갖고 있다.

다이사트는 왜 눈을 찔렀는지 추적하던 중 알런에게 말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와 무신론자 아버지 사이에서 왜곡된 사랑으로 억압 받으며 자란 알런은 자신의 잠재된 욕망의 분출구로서 말을 택했다. 소년에게 말 즉, ‘에쿠우스’는 절정의 욕망이자 거대한 신앙이었다. 

다이사트는 알런의 ‘비정상’ 적인 행동의 원인을 알아내지만 이를 ‘정상’으로 불리는 범주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이 오히려 사람의 정체성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다이사트는 나쁜 균을 죽이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이 우리 몸의 유익한 균을 죽이는 것처럼 치료를 내세워 소년의 정직한 욕망을 거세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를 통해 작품은 현대인의 욕망을 거세하는 것이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대학로 무대의 상징과도 같은 장두이와 안석환이 ‘다이사트’ 역을 맡아 절정에 다른 연기력을 선보인다. 또 2014년 공연에서 완벽한 캐릭터 해석으로 찬사를 모은 바 있는 전박찬과 함께 떠오르는 스타 오승훈, 정휘 등 세 배우가 ‘알런’으로 분해 젊은 피의 힘을 보여준다.  

배성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