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의 시간
정자가 난자를 만나 새 생명이 되는 건
삼억 이천만 분의 일 확률
하지만 그대들에겐 모두 열려 있다
지금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는 무한의 세계로 날아갈 시간
조영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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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세찬 바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 덮으며/ 물결은 가루로 흩어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 눈부신 페이지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 뛰어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돛단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위 시는 20세기 최고의 상징주의, 주지주의 시인이라는 칭송뿐만 아니라 프랑스 최고의 비평가이고 사상가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아주 긴 시(24연 144행)의 마지막 6행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이 문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낭송되었으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다.
바람이 불어와 민들레 홀씨가 날린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눈부신 세계들이다. 삼억 이천만 분의 일 확률이 아닌 내가 만들어갈 또 다른 세계가 막 시작된 것이다. ‘살아야겠다’ 시인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무한의 세계로 날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놀라운 디카시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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