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1]그림을 노래하다 [詠畫]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1]그림을 노래하다 [詠畫]
  • 전 백 찬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8.06.15 11:28
  • 호수 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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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노래하다 [詠畫]

푸르디푸른 장송 아래

흰 구름 그 사이서 피어나네

냇가엔 낚시하는 나그네 있으니

아마도 이곳이 부춘산인가 보다

蒼蒼長松下(창창장송하)

白雲生其間(백운생기간)

臨溪有釣客(임계유조객)

恐是富春山(공시부춘산)

- 임영(林泳, 1649~1696), 『창계집(滄溪集)』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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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滄溪) 임영(林泳)이 11세 되던 해에 지은 시로, 반짝반짝 빛나는 영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서술한 것이 오히려 천진한 동심을 엿보게 한다. 구름 낀 산 속에 우뚝 선 푸른 장송과 그 곁을 흐르는 시내, 그리고 그 냇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나그네를 그린 그림을 보았다. 이 그림을 보고 옛날 부춘산에 은거했던 엄광(嚴光)을 떠올린 모양인데, 아마도 이 어린아이는 당시 공부를 하면서 마침 이 고사(故事)를 배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이 고사를 배우고 나서 한 번 써먹어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이 그림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춘산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에 있는 산 이름으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이 은거한 곳이다. 광무제와 동학(同學)한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광무제가 제위에 오르자 성명(姓名)을 바꾸고 자취를 감추었는데, 뒤에 광무제가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질하며 생을 마쳤다고 한다. 엄광의 자(字)가 자릉(子陵)이므로 이 여울을 엄릉뢰(嚴陵瀨) 혹은 엄탄(嚴灘), 군자탄(君子灘)이라 부르고, 그가 낚시하던 대를 자릉대(子陵臺) 또는 엄광대(嚴光臺)라고 한다. 

『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에 “대인(大人)이란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註)에 “대인의 마음은 온갖 변화를 통달하고, 적자의 마음은 순일하여 거짓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대인이 대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물욕(物慾)에 유인을 당하지 아니해서 순일하여 거짓이 없는 본연의 마음을 온전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충하면, 모르는 바가 없고 능하지 못한 바가 없어서 그 큼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大人之心 通達萬變 赤子之心 則純一無僞而已 然大人之所以爲大人 正以其不爲物誘 而有以全其純一無僞之本然 是以擴而充之 則無所不知 無所不能 而極其大也]”라고 하였다. 천진하고 진실한 자질이 있은 뒤에야 예의와 문학을 할 수 있음을 비유한 ‘회사후소(繪事後素)’란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아름다운 채색을 더하기 위해서는 한 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비단 바탕이 먼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흰 바탕이 있어야 고운 채색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그 채색을 더욱 선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충신(忠信)의 바탕이 확고하게 정립된 사람이어야 예(禮)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예를 사리에 맞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략)     전 백 찬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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