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漫談)과 야담(野談) 빗자루 총으로 곰 잡은 이야기
만담(漫談)과 야담(野談) 빗자루 총으로 곰 잡은 이야기
  • 이미정
  • 승인 2008.03.28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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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동네에는 사랑방 구실을 하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이야 공인중개사 사무실이지만,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던 복덕방이 되기도 했고, 간이 술청노릇을 하는 점방인 경우도 있었다. C읍에서는 한약방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약방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동네에 퍼져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나, 누구를 험담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모두 약방을 통했다. 동네의 방송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씨는 그다지 평판이 좋지 못한 편이었다. 가뜩이나 재개발된 땅 덕에 덜컥 벼락부자가 되어 사람들의 시기어린 눈초리도 받는데다가 돈푼 좀 쥐었다고 사람 깔보고 다닌다는 말이 오고 갔던 것이었다. 더구나 근자에는 재취로 들인 베트남 아가씨 때문에 구설에 올라 있었다.

 

그간 고생하던 본마누라가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갓 스물 넘은 여인을 들였다는 것도 그렇지만, 재취를 들인지 얼마 되지도 않아 덜컥 애가 들어선 것이었다.

 

이미 동네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로, 박씨는 젊을 때 난봉질을 일삼다가 아예 생식기능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예순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조금만 반반한 다방 아가씨가 오기라도 하면 지분거리는 버릇은 남을 주지 못했다.


 자연, 수군거리는 말이 없을 수 없었다. 박씨의 애일 리가 없다는 둥, 이미 오기 전에 애가 있었을 것이라는 둥, 남우세스러운 소문이 약방을 중심으로 퍼졌다. 박씨는 약방을 단도리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인적이 떨어지는 저녁 어스름, 마침 문을 닫으려는 한약사를 밀치며 박씨가 들어섰다. 약사는 문을 닫으려다 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맞았다.


  “박씨 아저씨,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박씨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끝에 실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응... 아~글쎄... 나가 다 늦게 스무살짜리랑 새장가를 갔잖여... 근데...우리 귀염둥이가 임신을 덜컥 한 거여. 아, 참... 이놈이 이거 (그것을 떡~가리키며) 이렇게 힘이 남아도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혹시나 거시기, 힘 좀 떨어트리는 약 같은 거 없는가 ”


  약사는 박씨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한참을 고심한 끝에 말을 이었다.


  “아저씨, 제가 옛날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


  박씨는 대꾸도 안할 줄 알았던 약사가 말을 이어가자 이게 이빨이 먹히는구나 생각했다. 무릎걸음으로 반색하며 다가앉았다.   


  “응... 혀봐!”


  “옛날에 어느 동네에 아주 기가 막힌 명포수가 있었답니다. 백 발짝 떨어진 곳에서도 간장종지를 백발백중으로 맞췄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나갔는데 글쎄 이 포수가 총 대신에 빗자루를 가지고 간 겁니다.”


  “저런, 얼빠진 눔. 쯧쯧... 그려서 ”


  “숲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드디어 집채만 한 곰을 떡 발견한 거죠. 해서 이 포수는 망설임도 없이 곰 옆으로 살살 다가가서 멋지게 빗자루를 팍 꺼내며 땅! 그러고 쐈더랍니다.”


  “저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

 

  “곰한테 잡아먹혔겄지.”


  “아니에요. 포수가 빗자루를 총인 줄 알고 땅! 쐈더니 곰이 팍~쓰러져 죽더랍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딴 놈이 쐈겄지!”


  약사가 무릎을 탁 치며 박씨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박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며 약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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