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고통스럽다고? 사후세계로 떠나볼까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사후세계로 떠나볼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7.27 10:50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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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를 체험했다는 이들이 간혹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근사(近死) 세계’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세상을 보고 느꼈겠는가. 김성진 전 문공부장관은 1980년 급성 간염으로 쓰러졌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에 발을 디딘 후 청와대 대변인, 문공부장관을 지냈다. 건강은 회복됐지만 연합통신 사장, 싱가포르 대사를 지내는 등 간이 나쁜 상태에서 계속 무리한 공직생활을 했다. 그러다 1992년 혼수상태에 빠져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 병원에서 17시간에 걸쳐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흑인 처녀의 간을 이식 받았다. 

그는 수술을 앞두고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장관까지 지냈으면 인생을 행복하고 풍부하게 살았을 텐데 뭐가 아쉬워 이렇게까지 해서 살려고 하느냐, 그 돈이면 가족들이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데 나만 살고보자는 이기적인 자신이 가련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술 직후 고 박정희 대통령을 꿈에서 보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그의 침대 가까이 와서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자 김 전 장관이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하고 일어나려는데 박 대통령이 스르르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또 저승도 경험했다고 한다. 꿈속에서 강렬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잠시 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초록색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보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저승이란 느낌이란다. 

“황금색 도포를 입고 수염이 허연 중국노인이 꿈에 나타나 나보고 따라 오라고 해서 갔더니 커다란 궁전이 나타났다. 위풍당당한 노인이 날 맞으며 여기는 모든 성현명군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마음 내키는 대로 들어가서 만나보라고 했다. 난 ‘공자’라는 문패가 걸린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강렬한 햇빛에 눈이 멀 정도였다.”
그는 황홀한 기분이 되어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순간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찬란했던 궁궐이 사라졌고 노인도 안보였다. 그는 “내가 왜 여기 혼자 서 있나, 집으로 가야지”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잠에서 깼다. 

김 전 장관은 건강을 되찾은 후 대우그룹 부회장, 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을 맡는 등 사회활동을 하다 2009년 77세에 사망했다. 간을 이식받고 17년을 더 산 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란 시 ‘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73)가 최근 사후세계를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충남 서천군 출신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등단했다. 공주풀꽃문학관 주거시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11년 전 쓸개가 터져 중환자실에서 15일을 보냈다. 마지막 가는 길을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담당의사의 배려로 가족과 지내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참으로 그것은 특별한 세상이었다. 우선 육신의 고통이 없어서 좋았고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이어서 좋았다. 어디선가 향기마저 번지는 듯 했다. 그냥 아치형 터널 저쪽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좋은 세상을 두고 내가 돌아간단 말인가. 흐릿한 빛이 흘러나오는 터널 앞에서 배를 깔고 나는 엎드려 있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가 무슨 소릴까. 아버지란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한참 만에 아버지란 말이 부모 가운데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를 부르는 사람이 아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들의 부름은 너무나 절박했다. 왜 저 아이는 저렇게 애절하게 나를 부를까. 아무래도 그냥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렸다. 아니 마음을 돌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사는 목숨이 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나중에 아들에게 들은 바로는 사흘 밤낮을 잠도 안자고 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겨우 몇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근사세계 체험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밝은 빛, 푸른 초원, 행복한 느낌…. 현실이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근사세계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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