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71]단오에 우의정 봉암 대감의 시에 차운하며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71]단오에 우의정 봉암 대감의 시에 차운하며
  • 권 경 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 승인 2018.08.24 10:58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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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우의정 봉암 대감의 시에 차운하며

[端午次右相鳳巖韻]

타향에서 절일(節日) 만나 고향생각 간절한데

꾀꼬리는 아니 울고 제비는 날아가네

멀리 석실마을 송백당(松栢堂) 그 길에는

열 집 웃고 즐길 제 한 집만은 슬퍼하리

異鄕佳節故鄕思 (이향가절고향사)

鶯舌無聲燕羽差 (앵설무성연우차)

遙想石村松柏路 (요상석촌송백로)

十家歡笑一家悲 (십가환소일가비)

-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청음선생집(淸陰先生集)』   권13 「칠언절구(七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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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절의의 상징으로 널리 각인된 선현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이다. 1644년 두 번째로 청(淸)나라 심양(瀋陽)으로 끌려가 질관(質館)에 머물 때 지었다. 봉암(鳳巖)은 함께 끌려가 있던 이경여(李敬輿)의 호이다.

옛날에는 단오절, 중양절 같은 절일에는 가족들이 모여 단란하게 보내던 풍속이 있었다. 그런 절일을 타향에서, 더구나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험악한 곳에서 맞는 심정을 과장되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앵무새가 울지 않는다는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서

 “따로 깊은 시름 있어 남모를 한이 생겨나니 /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이런 때엔 소리 없음이 있는 것보다 나으리라 /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라고 한 것처럼, 시인의 슬픈 마음을 독자들에게 더욱 강하게 이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송백당은 고향 마을 석실(石室)에 있던 건물로, 시인이 평소에 휴식하던 곳이다. 마지막 두 구절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구월구일에 산동의 형제들을 생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의 의사를 차용한 것이다.

 

알겠네, 먼 곳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라 /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모두들 수유 꽂을 때면 한 사람이 빌 것임을 / 遍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요상(遙想)은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뜻이다. 요억(遙憶), 면상(緬想), 면억(緬憶)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원상(遠想)도 같은 의미인데, 시에서는 아주 드물게 쓰고, 편지 같은 산문에서 주로 사용한다. 요지(遙知), 요련(遙憐)도 같은 용법이다. 다른 형식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특히 7언 절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때는 제3구 첫머리에 놓는 것을 정격(正格)으로 친다. 아울러 그 상상의 범위가 제4구 마지막 글자까지 이어지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율시 등에서 쓸 때는 짝이 되는 구의 앞쪽 구에 주로 쓴다. 운문에서는 홀수와 짝수가 한 짝이 되는데, 이럴 경우 거의 홀수 구의 앞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 시어가 포함된 구절은 늘 번역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이 시어를 번역하려면 적어도 “멀리서 생각건대”라는 글자 수를 고정적으로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아무리 3·4조 시조 리듬을 살려 매끈하게 번역했더라도, 이 시어를 만나면 한 없이 길어지는 번역문 앞에 좌절하기 일쑤다. 그 경우에는 그냥 ‘멀리 ~ 하리라’ 정도로만 처리해도 뜻은 모두 담았다고 할 수 있다(하략).      

권 경 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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