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카페인가 ‘맘 깡패’인가
맘 카페인가 ‘맘 깡패’인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0.19 18:39
  • 호수 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수 어르신네 둘째 아들이 김 어르신을 마구 밀치며 폭행했대요. 제가 직접 본 건 아니고 10명도 넘는 사람들한테 들었어요.”

어느 날 경로당에 생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면 어르신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앞부분만 들으면 깜짝 놀랄지 모르겠지만 ‘직접 보지 않았다’는 말까지 듣고 나면 약간 정신이 모자란 사람의 헛소리로 치부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나 의심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라고 믿어서 김 어르신의 둘째아들을 천하의 호로자식으로 매도하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 

만약 비슷한 내용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맘 카페’에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우리 유치원 배성호 선생이 애를 밀치고 학대했어요. 제가 직접 본 건 아니고 10명도 넘는 사람들한테 들었어요”라고 한다면 말이다. 

지난 10월 13일 지역 맘 카페 회원들에게 아이를 폭행했다며 시달려 온 한 보육교사가 세상을 등졌다. 한 여성의 악의적인 글로, 아이가 선생에게 달려오다 스스로 넘어지고 뒷정리를 하던 선생이 미처 일으켜주지 못한 일이 아동폭행으로 둔갑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여성은 아이의 친부모도 아닌 이모였고 해당 유치원에 찾아가 보육교사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듯 패악질을 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안타까운 죽음이 벌어진 데는 맘 카페 특유의 패거리 문화가 있었다. 맘 카페는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 서비스인 ‘카페’를 통해 결성된 친목모임이다. 전국 시‧군‧구별로 한 개 이상씩 존재할 정도로 활성화 돼 있다. 초창기 모임의 취지는 좋았다. 악덕 상인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부도덕한 일에는 함께 힘을 모아 항의하는 등 순기능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권력집단으로 성장하자 식당 상인들에게 공짜 식사를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맘 카페에 올리겠다며 갑질하는 회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맘 카페가 자체적으로 이런 악성 회원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맘충’(엄마+벌레를 의미)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하며 집단으로 매도당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선량한 엄마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고 달라졌다. 말도 안 되는 글에 수많은 회원들이 유치원에 ‘갑질’을 해대는 것을 본 후 ‘과연 맘 카페에는 착한 엄마가 있기는 할까’란 의문이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추모글을 삭제하겠다는 해당 맘 카페의 대처를 본 후에는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맘 카페를 사회악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