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크레인 생각
[디카시 산책] 크레인 생각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8.11.16 13:47
  • 호수 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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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생각

이른 아침 더듬이를 세우자

높이의,

높이에 의한,

높이를 위한 하루가 몰려온다

**

크레인은 현대 문명의 상징이다. 변화와 발전 그리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숲이 사라지고 대신 우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는 빌딩을 가졌는가. 그리고 햇살이 비치지 않는 건물의 그늘 사이를 배회하고 있는가. 밤마다 꺼지지 않는 휘황찬란한 불빛을 밤하늘의 별빛과 맞바꾸었는가. 더 높이, 높이만을 지향하는 하루하루가 마침내 도시의 모든 시간을 점령하였다. 편리함이 주는 안락을 담보 삼아 우리들은 점점 흙냄새를 잊고 산다.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잃어버렸다. 서리 내린 잔디밭 위로 떨어지는 만월의 달빛을 밟으며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저 크레인의 더듬이는 수직 상승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오직 높아지는 일에만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다. 언젠가 저 구름과 푸른 하늘을 콘크리트로 뒤덮어버리는 날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늘을 올려다 볼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듬성듬성 조각난 하늘 몇 조각만이 남을 것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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