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6) 헝가리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6) 헝가리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11.23 13:39
  • 호수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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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민박집서 휴식 꿀맛… 혼자 걸어 세계여행 하는 분과의 추억도        

부다페스트에서 사라예보로 가던 중 ‘오일’ 새나와 수리하느라 곤욕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광장의 모습이다.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이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짜리 코린트 양식의 기념비가 서 있고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천사 가브리엘이 세워져 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광장의 모습이다.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이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짜리 코린트 양식의 기념비가 서 있고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천사 가브리엘이 세워져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들어가며 여기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전날도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비를 맞으며 4시간을 계속 달렸다.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자. 부다페스트에는 온천이 유명하니 한나절 온천이나 하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자’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한인 민박집 ‘최고집’을 찾아 나섰다. 부다페스트에 들어섰는데 내비게이션은 아직 70km나 남았다. 길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5km정도 가면 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내비게이션 그녀의 말을 다 들어 주면 큰일 난다”는 말이 있다. 한국 내비녀가 세계에서 최고이다. 

센트롬에는 불꽃 축제로 관광객이 몰려들어 교통이 통제되고 야단이다. 번지로 집을 찾는데 골목마다 막혀서 갈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집을 찾아 나섰다. 겨우 찾는데 성공했다. 유럽 특유의 공동주택은 큰문에서부터 최소 3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현지인 젊은 부인이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안내해 준다. 

현지인이 한국말을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최고집’의 안주인이다. 첫인상이 온화하고 친절과 겸손이 몸에 배어 여행자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파트를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는데, 2인실, 3인실 등으로 깨끗하다. 민박집 최 사장은 헝가리에 유학 와서 현지인과 결혼하고 민박업과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다. 친절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돋보인다. 

갑자기 초밥이 먹고 싶어졌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포시즌호텔 옆에 ‘동경’이란 초밥집이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잘하는 집이다. 스포츠센터에서 온천욕을 하고 출출하던 터라 입맛이 당겨 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곁들인 뜨거운 청주 한 잔에 취기가 기분을 돋워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렸다. 

도나우강 변의 야경은 한 번쯤 볼만하다. 강 건너 불빛을 받은 왕궁은 아름다웠고 도나우강의 작은 크루즈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심의 밤거리는 특색이 없다. 마사지 광고와 허접한 술집의 호객행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헝가리는 아직 기회가 많은 나라인 것 같다. 인구가 969만명,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201달러(2014년 기준)이고, 2014년 경제성장률이 3.6%로 유럽연합 내 최고수준을 보였다. 이런 동력은 2018년까지 계속 힘을 받아 경제 전반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헝가리는 한국 기업의 유럽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까닭에 삼성전자, 삼성SDI, 한국타이어 등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시골과 도시의 격차가 크다. 수도를 벗어나면 길가에서 과일 파는 농부들이 눈에 띈다. 시골길은 좁고 도로포장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다. 마을엔 자동차가 거의 없다. 특히 오토바이는 한 대도 없다. 집들도 단출하고 풍요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정은 세르비아를 통과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로 갈 예정이다. ​세르비아 국경검문소에서 입국사증을 받을 때 오토바이 보험이 끝난 것을 알았다.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나들다가 갑자기 절차가 복잡해졌다. 세르비아는 EU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서 300km 정도 비를 맞고 달리다가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하던 중 오토바이의 샤프트 부분에 기름이 흘러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10초에 한 방울씩 떨어져 뒷타이어가 기름 범벅이 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서울로 SOS를 보냈다. 서울 엔지니어는 즉시 운행을 정지하고 견인해서 센터로 가라고 했다.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아 있는데 이때 천사가 나타났다. 트럭 운전사 ‘토니’가 가까운 도시로 견인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중간지점인 크로아티아의 슬라폰스키 브로트​에서 일반 정비소에 입고시켰다. 

마침 금요일이라 토,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 엔지니어가 와봐야 어떻게 수리할지 판단한단다. 그리고 부품조달에 3~5일, 수리에 하루, 도합 8~10일은 걸린다는 것이다. 일단 마을 펜션에서 계획에 없던 3일간의 휴식을 하면서 궁리 끝에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 사는 지인에게 염치없이 부탁 전화를 했다. 

지인의 남편이 비행기 조종사라 최선의 해결방안을 알려줄 것 같았다. 역시 해결사였다. 곧 반가운 회신이 왔다. 이곳에서 150km 거리의 자그레브에 있는 BMW 서비스센터에 긴급 예약을 해줄 테니 그리로 옮기라는 것이다. 

BMW 서비스센터 진단결과는 샤프트 베어링의 파손이었다. BMW 유럽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품을 다음날 오후에 공수받아 수리를 끝냈다. 그럼에도 일정에는 많은 차질이 생겼다. 결국 사라예보, 몬테네그로, 두브로브니크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이 와중에 자그레브 한인 민박집에서 만난 은퇴한 교장 선생님과 맥주를 한 잔 하게 됐다. ‘혼자 걸어서 세계여행’을 하는 그분에게서 걷는 여행의 진수를 듣고 감동한 시간이었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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