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이론엔 성공했으나 경영에 실패한 페스탈로치
[109] 이론엔 성공했으나 경영에 실패한 페스탈로치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9.02.01 11:28
  • 호수 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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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페스탈로치는 18세기 말에 스위스에서 근대교육사상을 확립시키고 교육학의 기초를 세운 교육혁명가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학교 경영에서 뼈아픈 실패를 했다.
그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한 현장은 아베르돈 지역. 먼저 남학교를 세우고 여학교까지 병설시키자 전 유럽에서 교육의 방법을 배우고자 연수생들이 몰려오곤 했다. 1808년엔 선생과 학생을 합해 250명이나 됐지만 학교 경영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나 경영상태는 엉망이 돼 갔다. 처음엔 두 교직원 사이에 생긴 감정적 대립에 다른 선생들까지 가담하면서 분란이 깊어졌다. 이에 명망있는 선생과 제자들이 학교를 떠나버리고 1811년엔 학생수가 70명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1824년 2월, 페스탈로치는 “내 사업은 좌절되었다”란 성명을 발표하고 스스로 자신이 세운 학교를 폐교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가 농민학교를 세웠던 노이호프로 돌아가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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