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독자기고] 매년 꽃을 피우면서 성장하는 살구나무처럼
[백세시대 / 독자기고] 매년 꽃을 피우면서 성장하는 살구나무처럼
  • 김유필 대구 달서구
  • 승인 2019.04.26 14:02
  • 호수 6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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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필 대구 달서구
김유필 대구 달서구

집 베란다 너머엔 5미터 높이의 살구나무 한 그루가 수년째 사계절을 버텨내고 있다. 노란 살구 열매로 유명한 나무지만 봄에는 벚꽃을 연상시키는 꽃으로도 유명하다. 살구나무는 보통 4월에 연한 홍색의 꽃을 피운다. 꽃받침잎은 5장이며 홍자색이고 뒤로 젖혀진다. 꽃잎은 5장이고 둥근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멀리서 보면 벚꽃과 많이 닮았다. 실제로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헷갈려 한다. 올해엔 2월 말경 끝이 뾰족한 싹이 돋아나더니 3월에 접어들자 어린 아이 버선 같은 싹이 보였고 3월 중순부터 엉덩이 모양 같은 몽실몽실한 꽃을 피워냈다. 꽃이 다 지고 나면 머지않아 작은 구슬 같은 파란 살구가 맺힐 것이다. 

문득 어린 살구를 한입 베어 물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생전 처음 맛본 ‘떫은맛’에 몸을 잔뜩 웅크렸지만 시큼한 침이 감돌았던 그 시절. 순수했던 어린아이는 내뱉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살구 하나를 다 먹었다. 달지 않았지만 참을만했고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도 들었다. 이듬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꽃이 피고 지면 열매가 맺혔고 그때마다 나무에 달려 있는 덜 익은 살구를 보면 입안에 침이 고였다.  

자연은 순환한다. 체감 상 봄과 가을이 지나치게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진 듯해도 계절을 건너뛰지는 않는다. 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 식물들은 성장한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에 쑥쑥 자라난다. 또 가을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한 단계 성장을 위한 모진 시련을 견뎌야 한다. 그 시련을 거쳐야만 나무는 더 두터운 나이테를 두를 수 있다.

사람의 인생도 비슷하다. 현재 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걔 중에는 달콤한 수확을 거둔 이들도 있지만 영글지도 않은 열매를 땄다가 생전 처음 맛본 ‘떫은맛’에 주저앉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무너져서는 안 된다. 고작 한 번 농사를 잘못 지은 것뿐이다. 몇 번이나 그르쳐도 괜찮다. 자신의 실수를 고치고 나아가다보면 뿌리가 튼실한 나무처럼 우뚝 설 수 있다. 

노후 생활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삶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제2의 봄이다. 여전히 많은 노인들은 다시 맞은 봄에 어찌할지 몰라 씨조차 뿌리지도 못한다. 아니, 씨를 뿌려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백세시대’ 지난호에 실린 시니어모델들처럼 100세시대를 살아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선배인 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매년 똑같이 살구꽃과 열매를 맺으면서도 매번 성장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살구나무처럼 노인들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면서 달라지는 노인상을 제시해야 한다. 

김유필 대구 달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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