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죽음준비학교’를 가다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죽음준비학교’를 가다
  • 관리자
  • 승인 2006.08.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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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 뒤돌아보니 남은 삶 더욱 소중해”

어떤 일이나 준비가 필요하듯 죽음 역시 준비가 필요하다. 또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잘 살고, 못 살고’가 결정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남은 삶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목이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 개설된 ‘죽음준비학교’가 바로 그것으로 죽음을 두려운 것이 아닌, 인생의 마무리라는 점을 알려줘 남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나이 예순 중반을 넘어서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면 좋겠어.”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죽음준비학교 1기 교육생으로 참가하고 있는 서양옥(여·67)씨의 말이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돼 교육에 참가했다는 서씨는 교육받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며, 주위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죽음준비학교를 적극 권하고 있다고 했다.

 

또 용산 이촌동에서 하계동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는 이강임(여·72)씨는 “처음엔 죽음에 대해 막연하고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첫 수업부터 상쾌하게 시작해 이제는 마음이 즐겁다”며 “특히 자서전을 쓰면서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고 마음 정리가 되어, 남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하면 어둡고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특히 노년기가 되어 배우자나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이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현재 삶의 방해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노년기에 자살이 많은 것도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서울 노원 하계동에 위치한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은 이런 점에 착안해 국내서는 처음으로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죽음준비학교를 마련하고 서울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달 17일 처음 개설됐다.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5주간 무료로 진행되는 죽음준비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정보를 제공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재 여성 16명, 남성 4명의 총 20명이 1기생으로 교육에 참가하고 있으며, 4기까지 총 80명의 노인들에게 교육기회가 주어진다.

 

복지관 관계자는 “체험, 견학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호응을 받으면서 벌써 3기 수강생까지 마감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프로그램 통해 삶의 의미 되새겨

 

죽음준비학교의 프로그램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자서전·유언장 쓰기, 한마음 캠프, 납골당 등 장묘시설 방문, 장기기증본부 방문, 영정사진 촬영 그리고 죽음 고비를 넘긴 인사를 초청해 ‘삶을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특강 등으로 진행된다.

 

특히 유서쓰기 시간에는 변호사를 초빙해 유서 작성의 법률적인 부분까지 강의해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총 18회의 교육 중 마지막 2회는 교육생들이 직접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찾아 자신이 배운 내용을 동년배 노인들에게 강의하는 시간도 갖는다.

 

노인참가자들은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과정으로 지난달 28~29일 양일에 걸쳐 경기도 가평에서 진행된 한마음 캠프를 꼽았다. 자연을 벗 삼아 서로 우정을 다지고 역할극을 통해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노인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이들은 또 캠프에서 자녀들에게 보낼 ‘영상 편지’를 제작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석고로 뜨는 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지난 15일에는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방문해 장기기증의 의미와 장기기증을 통해 아름다운 삶을 실천한 사람들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장기기증운동본부 최승주 사무국장의 강의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교육에서 교육생들은 장기기증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 아파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어르신들은 실질적으로 장기기증 대상자가 되기 어렵다.

 

대신 오늘 교육을 통해 장기기증의 소중함에 대해 널리 알려달라”는 최 사무국장의 말에, 교육생들은 앞 다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하기도 했다.이날 강의가 끝난 후에는 지난 12일 견학했던 납골당과 추모의 숲(산골장)에 대해 20명의 교육생이 돌아가며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최상희(여·70)씨는 “가서 보니 죽음이 평화롭게 느껴졌고, 특히 산골이 참 좋더라”며, “나도 나중에 죽으면 묘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렇게 묻혀야겠어”라고 말했다.

 

이어 노영옥(남·81)씨는 “죽음준비 교육을 통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 고마워요”라며, “내 수명이 85세라는데, 남은 4년 동안 좋은 일만 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기도 하는 등 20명의 참가자들 모두가 견학을 다녀온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박지은 복지관 연구개발부장은 “어르신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면서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많은 어르신들이 참가를 원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4기까지 밖에 진행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며, “이번 교육에서 보듯 죽음 교육은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만큼,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기업이나 단체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세대별 죽음준비 교육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유 경 강사


첫 강의 때 ‘저는 죽음에 대해 가르쳐 드리러 온 사람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죽음에 대해 마음 놓고 이야기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러 왔다’고 말했다는 유 경 강사〈사진〉.유 강사는 이에 대해 “어르신들이 죽음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교육을 받으러 온 어르신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어요. 호기심 반, 기대 반이셨는데 ‘교육이 너무 어둡고 우울한 것 아닌가’하는 표정들이셨어요.

 

그런데 여러번의 강의 후 어르신들의 표정이 확 달라지셨어요. 죽음이란 것이 꼭 어둡고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되신거죠”라고 말했다.

 

유 강사는 “죽음준비학교는 처음부터 ‘아름다운 삶’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위해서 캠프, 견학 등 즐거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행복한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가 함께 이야기되도록 구성했다”며 “이를 통해 어르신들이 죽음에 대한 어둡고 왜곡된 인식이 변화됐고,

 

특히 동년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동질감을 느껴 더 많은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이어 “죽음준비 교육은 어떻게 죽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이제는 세대별 죽음준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유 강사는 끝으로 최근 죽음준비 교육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유행으로 끝나서는 절대 안되며, 이번 교육을 본보기 삼아 체계적인 죽음준비 교육과정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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