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조선왕실이 인정한 유일한 ‘일부이처’ 주인공
[127] 조선왕실이 인정한 유일한 ‘일부이처’ 주인공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9.05.17 13:38
  • 호수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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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조선왕조 때부터는 일부일처제를 법령으로 정했기 때문에  첩이 생겨났고 첩의 수효엔 제한이 없었다.
구한말 이완용 내각에서 대신을 지낸 조중응은 매국노 7역신(七逆臣)중 한사람으로, 일본에 갔을 때 미쓰오카란 일본 여성과 가까이 지내다가 그녀를 한국에 데려왔다.
그러나 조중응에겐 이미 최씨라는 아내가 있음을 알게 된 미쓰오카는 첩살이는 싫으니 일본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울며불며 소란을 피웠다. 난감해진 조중응은 임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특별히 재가를 얻어내 두 여인을 모두 아내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최씨를 좌부인(左夫人), 일본 여인을 우부인(右夫人)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것은 1908년 있었던 일로 왕조에서 공식적인 일부이처를 인정한 극히 드문 예가 된다고 조선말 47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에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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