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8] 꿈에 선친을 뵙다 [夢拜先君]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8] 꿈에 선친을 뵙다 [夢拜先君]
  • 강 만 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19.05.24 13:07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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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선친을 뵙다 [夢拜先君]

죄 많은 이 목숨 살아 있으니

풍수의 슬픔 견디기 어려워라

무단히 선친을 모셨더니

병환이 있어 치료가 시급해 보였네

목소리는 생전이나 똑같건만

체구는 옛날보다 줄어드셨구나

깨어보니 쓸쓸한 객관의 새벽

비몽사몽간에 눈물만 흘리노라  

罪戾餘生在 (죄려여생재)

難堪風樹悲 (난감풍수비)

無端陪杖屨 (무단배장구)

有疾急醫治 (유질급의치)

警咳猶平昔 (경해유평석)

儀形減舊時 (의형감구시)

覺來孤館曉 (교래고관효)

怳惚淚空垂 (황홀루공수)

- 홍명원(洪命元, 1573~1623), 『해봉집(海峯集)』 권1 「오언율시(五言律詩)」


홍명원이 선친 홍영필(洪永弼)을 꿈에서 뵙고 쓴 시로, 지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연보를 보면 홍명원은 1597년(선조30)에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이후 검열, 설서, 교리 등의 청직(淸職)을 역임하다가, 1601년 11월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을 때 부친을 여의게 된다.

꿈이라는 시공간은 때론 만나고 싶어도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을 실현시켜주기도 한다. 가만히 있고 싶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아 괴로운 나뭇가지처럼, 부친이 살아계실 때 마음껏 다하지 못한 봉양 때문에 돌아가신 후에 괴로워하던 시인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찾아온다.

꿈속에서 뜻밖에 만난 선친은 병색이 완연해 보인다. 급히 치료해야 할 것 같아 염려스러우면서도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생전에 비해 유난히 앙상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서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대체로 후회를 하곤 한다. 그게 무언가를 잘하든 못하든 간에 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부모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이유로 후회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한없는 편안함을 주는 존재이지만 지금껏 내 곁에 있어왔기에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그들이 부재한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바람이 그치지 않을 때에야 나뭇가지는 가만히 있기를 바라고, 부모가 세상에 없어야 자식은 비로소 모시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인과 관계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꿈에 나타난 선친의 병세가 심각하고 체구가 줄어든 것은 시인의 마음속 후회와 그로 인한 괴로움이 반영된 게 아닐까. 이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쓸쓸히 눈물짓는 시인의 모습이 나인 듯 서러워진다.

그러니 돌아가신 부모들이여, 당신 자식들의 다음 밤 꿈에는 부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소서. 이러한 염원을 담아 마음속에 향불 한 줄기를 피워 올리노라.     

강 만 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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