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빗방울 하나가 바닥을 칠 때
아픈 것들은 아픈 것들끼리 필사적으로
부둥켜 안는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까지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빗방울 하나하나는 바닥을 치고 흩어졌다가 순식간에 한 덩어리를 이룬다. 빗물은 높고 낮음이 없고 수평을 이루어 모두 공평하다. 비가 오는 날은 우울한 기분을 서로 함께한다는 공범의식이 강해서 서로를 몹시도 더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끌어당기는 지도 모르겠다. 참 좋은 시절을 함께 흘려보내려는 것처럼, 함께 흘러가고 싶은 것처럼. ‘호우시절’(好雨時節, 때를 알고 내리는 비)이라는 동명의 한국영화가 2009년 상영되었다. 청춘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이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는 이야기다. 시인의 꿈을 꾸다 건축회사 직원이 된 30대 동하(한국 남자 정우성)가 중국으로 출장을 와 유학 시절 모호한 감정을 가슴에 묻은 채 헤어진 친구 메이(중국 여자 고원원)와 재회한다. 그녀는 청두의 관광지인 두보초당(시인 두보가 살았던 고택)에서 가이드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둘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둘이 함께 할 미래가 있을지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번민한다. ‘좋아하는 여자한테만 잘해 줘. 그거면 충분해’라는 대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호우시절’은 두보의 시에서 가져온 말이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이 봄에 내려 만물이 소생하는구나!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따라 이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중에서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