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퇴직은 은퇴가 아니다
[백세시대 / 금요칼럼] 퇴직은 은퇴가 아니다
  •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9.20 14:24
  • 호수 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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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활동서 물러나는 퇴직과

모든 사회활동 그만두는 은퇴는

다른 말인데 같은 의미로 사용

퇴직은 여러 번 반복될 수 있고 

활기찬 노후의 삶 얼마든지 가능

흔히들 퇴직(退職)과 은퇴(隱退)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은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퇴직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업활동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우리말이 바탕을 두고 있는 한문인 退職(물러날 퇴, 맡을 직)은 뜻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직업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 사전에도 퇴직을 모두 직업 활동에서 물러나는 것이라 하고 있다. 반면에 은퇴는 직업  활동과 다른 사회활동에서 물러나 한가히 지내는 것을 말한다. 隱退(숨을 은, 물러날 퇴)를 한문의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물러나 숨는다”는 것이다. 즉 은퇴는 직업 활동과 사회활동 모두에서 물러나 보이지 않게 조용히 지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퇴는 퇴직보다는 바람직한 의미의 말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퇴직은 우리 인생에서 청년, 중년에도 일어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중년기 중이나 중년기 말에 일어난다. 퇴직은 어떤 특정 직업(활동) 또는 그 일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이후 다른 직업 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없다. 따라서 우리 일생에서 퇴직과 취업은 여러 번 반복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퇴직은 퇴직 이후  다시 다른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일생 기간은 크게 연장되고 건강 상태도 나이에 비해 계속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수명연장은 반드시 노년기의 연장이나 늙고 쇠약해진 상태(老衰)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수명연장, 평균수명 연장, 또는 고령화(高齡化)를 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은 노쇠한 상태가 크게 연장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고령화 사회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일할 수 없는 사람만 많이 늘어나 사회적 부담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수명연장과 더불어 건강 상태도 계속 증진되고 있고, 개인차도 크기 때문에 70대까지는 육체적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일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와 4차산업혁명 사회로 발전하는 미래사회에는 일생동안 퇴직과 취업은 여러 번 반복될 수 있다.

고령화 사회, 4차산업혁명 사회로 진전할수록 연령상으로 규정한 15~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는 심각한 저출산 영향으로 줄어들게 될 텐데 계속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를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부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보장제도로 65세 이후 30년 이상이나 길어지는 노후생활을 제대로 보장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70대까지 계속 일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UN에서는 세계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고령화에 대응한 가장 효과적 사회적 대책과 개인적 대책의 방향으로 2000년대부터 ‘활기찬 노화(active ageing)’를 추진하고 있다. 활기찬 노화는 직업 활동, 사회활동, 개인 취미 및 특기 활동 등 다양한 생활영역에 다 적용된다. 활기찬 노화는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99-88-234’와 거의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길어진 인생의 경제적 대책뿐만 아니라 건강, 사회적 관계, 다양한 사회참여활동, 여가활동을 위해서도 활기찬 노화가 필요하다. 활기찬 노화의 삶을 지향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직업 활동과 사회활동에서 물러나 한가히 지내는 은퇴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

퇴직이라는 말 대신 은퇴라는 말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중년기 이후 한번 퇴직하면 재취업이 힘들고 정년퇴직 이후는 아주 취업절벽이 오는 현실을 생각한 것 같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퇴직이라는 말은 걱정과 불안을 일깨우는 것이 되기 때문에 듣기도 하기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퇴직을 대신할 다른 표현(완곡한 표현)으로 ‘은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나 隱退라는 말은 따져보면 직업 활동과 사회활동에서 물러나 한가히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변화에도 맞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라 생각된다. 

일부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퇴직과 은퇴를 잘 구분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은퇴가 아니라 퇴직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1970년대 말 처음 미국에 유학 갔을 때 퇴직(retire)의 바람직한 의미는 “(준비한) 무엇을 하기 위해 현재의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다(retire from the job to another jobs or activities)”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retire의 바람직한 의미에는 ‘retire’라는 영어단어가 은퇴나 은둔(seclusion)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는 생각하지 말자는 뜻도 포함되지 않나 생각된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삶에서, 미리 준비한 무엇을 위해 물러나는 퇴직은 여러 번 있어도 은퇴는 한 번밖에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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