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저물고 있는 ‘디카’의 시대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저물고 있는 ‘디카’의 시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1.15 14:19
  • 호수 6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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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쯤이었던가. 한 선배가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꼭 갖고 싶은 물건으로 떠올랐던 디지털 카메라(디카)를 학교에 가져왔다. 캐논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카메라 회사 중 하나인 니콘의 제품이었다. 그당시 카메라 화소(높을수록 해상도가 높다)는 200만 정도였는데 최근에 발매되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가 1000만 화소를 넘어가는 걸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무게도 스마트폰의 3~4배는 됐던 것 같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학가에는 일명 디카 열풍이 불었던 것 같다. 너도 나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디카를 구입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렌즈 교체가 자유로운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일명 DSLR이 대세로 떠올랐다. 기존 디카와 달리 조리개, 셔터 스피드 등을 수동으로 조절해야 제 기능을 다 쓸 수 있는, 사실상 전문가들을 위한 카메라지만 ‘배우면 되지’하면서 묻지마 구매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에도 복잡한 기능을 알 필요 없이 ‘자동 모드’를 강화한 신제품이 쏟아지면서 사진 찍을 때 폼이 난다는 이유로, 남들이 다 산다는 이유로 꾸준히 디카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 디지털 카메라는 전성기를 맞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디카의 인기는 스마트폰이 성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디카의 성능을 못 따라가면서 고유의 시장은 유지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스마트폰 카메라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미래를 예측한 삼성은 2015년부터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사실상 정리하고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이미지센서 기술에 집중해 이 분야 2위까지 올라섰다. 

반면 캐논과 니콘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휴대도 간편하고 누구나 쉽게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 카메라가 성장하자 두 회사는 날개 꺾인 추락을 시작했다. 디카 시장의 40.5%를 차지하고 있는 캐논이 지난 10월 28일 공개한 올해 3분기 실적을 보면, 카메라가 포함된 ‘이미징 시스템’ 사업 영업이익이 1088억원(101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56.8% 줄어들었다. 시장점유율 19.1%로 2위인 니콘 역시 11월 7일 이번 회계연도(내년 3월 기준)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 전체 영업이익은 320억원 줄어든 2153억원(200억엔)으로 지난해보다 75.8% 감소한 수치다. 

미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재 형태의 디카는 소수만 사용하는 장비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비디오와 공중전화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그랬던 것처럼 시대를 상징했던 디카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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