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여성사전시관 ‘여성, 세상으로 나가다’ 전…여성 후배 양성위해 돈 모았던 최초 여기자
국립여성사전시관 ‘여성, 세상으로 나가다’ 전…여성 후배 양성위해 돈 모았던 최초 여기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1.15 15:42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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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부터 현재까지 근현대사의 한축 이룬 여성들의 직업 변천사
직업권 주장했던 여권통문, 여성이발사 이덕훈의 이발가위 등 선봬
여성 직업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복을 비롯한 관련 유물을 통해 시대 통념에 도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공군복 등 시대별 직업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여성 직업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복을 비롯한 관련 유물을 통해 시대 통념에 도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공군복 등 시대별 직업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백세시대=배성호기자]“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현재 종로구)에 살던 이소사(召史, 기혼여성을 지칭하는 말), 김소사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여학교 설시 통문’, 일명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문장 중 일부다. 당시 여권통문을 발표한 여성 300여 명은 여성의 교육권·직업권·참정권을 주장, 여성의 사회진출과 권익 증진을 촉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11월 11일 경기 고양시 국립여성사전시관에는 이 통문이 실린 1898년 9월 8일자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이 소개돼 있었다. 이 통문으로 촉발된 여성의 사회진출의 역사는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여성직업 변천사 100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이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8월 14일까지 진행되는 ‘여성, 세상으로 나가다: 여성 직업 변천사 100년’ 전에서는 1890년대부터 현재까지 근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 여성들의 직업 관련 사진, 유물, 영상 등을 시간순으로 볼 수 있다.

먼저 1부인 ‘여성, 깨어나다’에서는 1890년대부터 1910년까지의 직업을 다루고 있다. 여성농민들은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었고 밭을 갈았으며, 물레를 돌리고 베틀로 옷감을 짜서 식구들의 의복을 지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직업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여권통문을 통해 직업권을 주장하면서 19세기 말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기반하는 신분질서가 깨지고 여성 직업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초 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근대적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힌 조선의 여성들 가운데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간호사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 등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어지는 ‘암울한 시대를 헤쳐 나가다’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여성 직업을 소개한다. 대다수의 여성은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고 일부 가난한 소녀들은 도시의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일본과 서구를 통해 들어온 근대문화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인식에 변화를 가져와 모던걸이라 불리는 신여성을 탄생시킨다. 이로 인해 화가 나혜석, 기자 최은희, 비행사 권기옥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가장 눈여겨 볼 인물은 일제감정기 민간지 첫 여기자로 활동했던 최은희이다. 그녀가 1924년 조선일보에 입사할 당시 여성 기자에게는 취재 활동이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최은희는 애국계몽운동과 여성해방 등을 주제로 활발한 취재를 펼쳤고 변장을 한 채 아편굴과 매음굴을 취재하며 화제를 모았다. 1926년 6‧10만세 운동을 호외로 보도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최은희가 여성언론인을 양성하기 위해 매달 저축을 한 양철통을 비롯해 활동자료를 소개한다. 최은희는 임종하며 거금을 기탁해 1984년 부터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여할 수 있게 했다. 

3부 ‘산업화의 동력을 만들어내다’에서는 광복 이후 전쟁에 동원된 남성의 빈자리를 메꿔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한국전쟁 이후 여군, 여경이 새롭게 창설됐고, 시장에서는 여성들이 장사, 노점상을 해 돈을 벌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수출주도의 산업화 정책 아래에서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정부, 버스차장 등 직업군은 매우 한정됐다. 1970년대 산업화시기에 최초로 여성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의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마지막 ‘여성, 일할 권리를 외치다’에서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이 된 시기를 다루고 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보다 많은 직군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커진다.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은 차별적인 가족법 철폐를 통해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다. YWCA 여성직업교육은 여성이 도배공, 타일공, 페인트공 등 전형적인 남성 노동영역에 진출해 성별 노동의 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이발기술을 배웠다는 여성이발사 이덕훈의 이발가위, YWCA 도배사 직업교육 1기생 김말녀의 작업복과 작업 도구 등이 전시돼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1997년 외환위기와 대규모의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AI) 분야 전문가 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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