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타라와 전투의 악몽
[144]타라와 전투의 악몽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9.11.22 14:40
  • 호수 6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태평양전쟁때 불과 1평방마일의 작은 섬에 함포 포탄과 항공 포탄이 3000톤이나 투하된 경우는 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작은 섬 ‘타라와’가 거의 유일하다. 
미군은 일본군이 장악한 이 섬을 빼앗기 위해 1943년 11월 20~23일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미군은 지상군 상륙전에 무려 3000톤의 포탄을 섬에 퍼부었다. 당시 미 해군 제독은 이 공격으로 섬 안의 일본군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일본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이 섬의 방어를 위해 섬에 있는 직경 8인치의 야자수를 통째로 베어 구축한 진지에 콘크리트 벽을 쌓는 식으로 1년여에 걸쳐 섬 전체를 콘크리트 요새화했다. 
이 사실을 모른 미군은 함포 사격과 항공기 포탄 투하가 끝난 후 의기양양 상륙작전을 펼쳤다. 이때 일본군은 엄청난 화력의 해안포 공격을 퍼부었다. 겨우 상륙한 미군들은 곳곳의 콘크리트 진지와 지하갱도 속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미군의 최정예부대이자 167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미국 부대는 전사 1009명, 부상 2296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끝에 겨우 섬을 점령할 수 있었다.
미군은 이 타라와 전투에서 얻은 교훈으로 인해 대규모 포탄 투하 후 공격하던 상륙작전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