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허술한 행정에 경로당 애먼 피해
지자체 허술한 행정에 경로당 애먼 피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2.06 14:37
  • 호수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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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 화재속보기 설치하며 특정업체에 ‘일감 몰아주기’      

주민 동의 없이 신축 경로당 1층에 공중화장실… 결국 공사중단

경로당 신축한다고 해놓고 확보된 예산 다른 사업에 투입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경북의 A시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예산 15억원을 들여 관내 24개 읍면동 경로당 500여곳에 ‘유무선 자동화재속보기 설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재 초기 대응이 힘든 어르신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것으로 올해에는 2월부터 6월까지 우선 5억1000만원을 투입해 경로당 190개소에 설치했다. 하지만 최근 이 사업이 일명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일으키며 해당 지역 경로당만 머쓱해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A시의 한 노인회 관계자는 “불이 났을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화재속보기를 설치해준 것은 고마운데 경로당 지원을 목적으로 시 관계자가 다른 잇속을 챙기려는 시도가 불쾌하다”고 말했다. 

최근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지원을 받는 경로당을 난처하게 하고, 주민 동의도 없이 새로 짓는 경로당에 공중화장실을 지으려 하는 등 지자체의 미숙한 행정 처리로 인해 일부 경로당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도마 위에 오른 A시는 경쟁입찰을 통하지 않고 24개 읍면동별로 예산을 2100여만원 배정해 특정 B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자동화재속보기를 구입했다. 자동화재속보기를 판매하는 업체가 여러 곳인데도 대상 읍면동이 모두 B업체와 독점으로 계약해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다른 자동화재속보기보다 비싼 가격도 문제가 됐다. 화재속보기는 화재가 발생하면 경보와 함께 자동으로 소방서에 통보하는 설비로 유선은 30만원대, 무선은 10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그런데 B업체의 공급가격은 대당 260여만원으로 터무니없이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 경로당은 자동화재속보기 같은 소방시설을 꼭 설치해야 되는 의무시설이 아니어서 유선이든 무선이든 화재속보기 기능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유선으로 하면 관내 전체 경로당에 설치하고도 남을 예산으로 고가의 특정 업체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해당 경보기를 설치한 경로당만 중간에 끼어서 난처해진 것이다.

또한 동의 없이 신축 경로당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려다 주민들의 반발로 공사가 중단된 곳도 있다. 인천의 D마을은 현재 200여 명의 노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경로당이 없어 15분 이상 걸어 다른 지역의 경로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315명은 2016년 2월 ‘경로당 건립 건의서’를 B구청에 제출했다. 이후 B구청에서 이를 받아 들여 경로당을 신설을 추진하게 됐다. 

이후 해당 구청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부지를 마련, 내년 준공을 목표로 경로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2층 규모 건물 경로당 1층에 공중화장실을 만들려고 한 것이 문제가 됐다. 

B구청은 D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화장실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주민 민원에 따라 경로당 건물에 공중화장실을 지으려고 했다는 입장이다. 또 사전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동의서도 받았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이 마을 주민들은 설명회에 참석하거나 동의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공사는 중단됐다.

이 마을에 사는 이경숙(가명‧82) 어르신은 “경로당 1층에 악취를 풍기는 공중화장실이 생기면 주민들도 불편하고 경로당도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는 것 아니냐”며 지자체의 미숙한 행정을 비판했다.  B구청은 원점에서 경로당 건립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경로당이 사회복지시설로 규정돼 건축법상 건물의 용도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최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B구청 관계자는 “경로당 1층에 어떤 시설을 조성해야 할지 재검토하고 있고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주민설명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듣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 부지까지 매입했지만 매끄럽지 못한 행정 처리로 신축이 좌절된 경로당도 있다. 울산 W경로당은 지난해 확보한 10억원대 신축 예산을 타 사업에 뺐기고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상 2층 규모의 W경로당은 1993년도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다. 회의장으로 이용되던 2층은 빗물이 새면서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C구청이 실시한 건물 정밀안전점검에서는 한쪽 벽면에 문제가 발견돼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C구청은 W경로당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지상 3층 규모로 신축·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지난해 국비 4억원, 시비 12억원, 구비 5억5600만원을 확보했고 이전 예정부지 600여㎡에 대해 구비 1억원을 들여 보상·철거 작업도 마무리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W경로당 이전·신축 사업이 중단됐다. 확보된 시비 12억원은 타 사업에 투입됐다. 이전·신축 사업이 기약 없이 중단되자 노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C구청은 남은 국비로 리모델링을 추진, 확보한 국비 4억원에 대해 용도변경을 신청해 지난달 승인을 받았다. C구청은 W경로당에 대한 내진보강공사 실시설계용역을 진행하고 있는데 용역이 마무리 되면 공사를 시작해 내년 6월 경 리모델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C구청 관계자는 “구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불가피하게 리모델링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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