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좋은 죽음은 가족과 좋은 관계에서 죽는 것”
[신년특집] “좋은 죽음은 가족과 좋은 관계에서 죽는 것”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12.27 14:29
  • 호수 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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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노년기와 죽어감의 궤도에 진입하면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죽어감과 죽음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최근 발간한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학지사)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 심리를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조명해 2019년 출판계 화제의 책으로 떠올랐다. 권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나와 서울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임상심리연수원 과정을 이수하고 호주 퀸즐랜드대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의 내용 중 ‘죽음 수용과 죽음 교육, 좋은 죽음’ 부문을 발췌해 싣는다.


죽음은 고통으로부터 해방·영원한 안식·본래 있었던 곳으로의 귀향…

서울대 권석만 심리학과 교수 화제작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발췌

성공적인 노년기를 보내는 노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해서 수용적인 태도를 지닌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인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나눌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죽음 불안이 낮은 이유는 죽음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죽음 수용을 위해서는 죽음 직면과 죽음 통합이 필요하다. 죽음 직면은 죽음을 삶의 하나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죽음 통합은 그러한 직면의 인식 내용을 통합해 긍정적 정서로 반응하는 것이다. 

예컨대 죽음은 영원한 안식,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육체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본래 있었던 곳으로의 귀향, 새로운 세계로의 흥미로운 모험과 같은 긍정적 측면을 지닌다. 죽음 통합은 이처럼 죽음의 긍정적 측면을 인식하면서 죽음을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리치료사들은 죽음의 운명을 용기 있게 대면하여 자각하고 수용하는 것이 진실한 삶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수용을 중시한다. 특히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서는 수용이 매우 중요한 미덕이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며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라고 한 고백은 수용과 순종을 보여준다. 이슬람교에서도 수용과 순종 그리고 겸손은 매우 중요한 미덕이다.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신에 대한 자발적 순종을 의미한다.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무지하고 무력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수용과 순종일 것이다.

죽음 수용은 일종의 의무감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코넬리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존엄성을 상실한 채로 고통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죽어감의 과정을 과도하게 의료적 개념으로 규정하거나 죽음을 적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악을 회피해야 한다. 현대인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죽음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인이 삶과 죽음을 품위 있게 관리하기 위해서 죽음 수용에 대한 의무감을 지녀야 한다. 죽음 수용을 위해서는 3가지 요소 ▷죽을 준비 ▷죽어야 할 적당한 시기의 인식 ▷죽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 요소,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다. 잘 죽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인생의 주요한 목표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전념하는 것과 함께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은 좋은 죽음의 기본적 조건이다. 어떻게 죽을지를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두 번째 요소, 과거에는 사람들이 너무 이른 시기에 맞이하는 원하지 않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명을 연장하는 대신에 존엄성 상실과 불필요한 통증으로 삶의 질이 희생됐다. 이러한 현실은 개인이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는 일차적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육성하는 것은 죽어야 할 적당한 때를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요소, 죽으려는 의지는 자신의 죽어감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이다. 죽으려는 의지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이 죽어 가는 방식을 선택하고 책임을 짐으로써 좋은 죽음에 이르려는 결심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죽으려는 의지는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하거나 또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가령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거부하거나 자살 또는 안락사와 같은 적극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결심을 뜻한다. 

행복한 인생은 좋은 죽음을 통해서 완성된다. 아무리 성공적이고 화려한 삶을 살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지막 과정 즉 죽어감과 죽음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비참하다면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죽음학의 궁극적 목표는 죽음 교육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죽음과 죽어감을 잘 이해하고 준비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삶을 누리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다.

심리학자 알폰스 디켄은 일반인을 위한 죽음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세분해 제시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기, 죽음 준비하기, 죽음에 대한 터부 제거하기, 죽음의 공포와 불안 해소하기, 생명의 소중함 깨닫기, 말기환자의 알 권리 가르치기, 죽어가는 사람 돌보기, 안락사에 대해 이해하기, 장기이식에 대해 고려하기, 장례절차 준비하기, 유머 잃지 않기, 사후생에 대한 관점 이해하기 등이다.

죽음 교육에서 가르치는 것들

그렇다면 죽음 교육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 노인 대상의 죽음교육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죽음에 대한 탐색’ 주제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태도 및 감정 파악하기, ‘이별과 홀로서기’ 주제로 사별 후의 경험 나누기와 효과적인 대처 경험 발표, ‘장례준비’ 주제로 유언장 작성하기, ‘품위 있는 죽음’ 주제로 자신이 원하는 임종맞이에 대해 의견나누기, ‘멋진 마무리’ 주제로 앨범과 사진을 보며 지나온 자신의 모습 되돌아보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의 죽음학과 죽음 교육은 초기의 발전단계에 있다.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제대로 준비할 여유도 없이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죽음 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끝으로 저자는 죽음에 관한 명구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인간이 진정한 자기를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죽음과 대면할 때뿐이다(성 오거스틴), 매일 우리 안에서 탄생과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찰리 채플린), 죽음의 공포는 삶의 공포로부터 나온다. 삶을 충만하게 산 사람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 있다(마크 트웨인).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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