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흑인차별’은 규탄하면서 동양인차별 방치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흑인차별’은 규탄하면서 동양인차별 방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6.12 14:06
  • 호수 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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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2월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이슈는 흑인차별이었다. 직전 열린 87회 시상식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백인들이 주요 부문 후보를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흑인배우들이 불참을 선언하자 아카데미측은 유명한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을 사회자로 내세운다. 흑인에게 진행을 맡겨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  

무대에 오른 그는 “흑인들의 불참 사태 때문에 사회를 거절할까 고민했다. 난 실업자이고 이자리를 백인인 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넘길 수 없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흑인 후보자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바에야 흑인을 위한 상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연기로만 얘기하면 충분한 것 아니냐”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고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그는 거대한 실수를 하나 저지른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도중 그는 수상자 투표를 집계하는 회사를 소개하겠다면서 아시아계 어린이 3명을 무대 위로 올렸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훌륭한 회계사가 될 3명을 소개한다. (회사는) 헌신적이고 근면한 직원들을 보냈다. 농담이 불쾌했다면 SNS에 올려라. 물론 스마트폰은 모두 어린이들이 만들었다”고 떠들었다. 얼핏 보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발언에는 동양인을 향한 비하 의도가 담겨 있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이 회계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히 동양인이 셈에 밝다는 ‘편견’을 바탕으로 ‘회계사나 되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마치 흑인들의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로 “넌 탈 일이 없어 선크림 안 발라도 되겠네”라고 말한 꼴이다. 직전까지 흑인차별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사람이 버젓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현재 미국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로 시끌시끌하다. 전 세계의 유명인들도 앞다퉈 이를 지지하며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사비 1억원을 흑인차별을 없애는 데 사용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국의 흑인들은 동양인이 코로나를 옮기는 주범이라며 테러를 저질렀다. 또 이번 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한인마트가 폭도로 돌변한 시위대에게 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 진행되는 시위를 온전히 지지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당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무관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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