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기고] “집안 자랑 말자” 어느 경로당의 이색 실천강령
[백세시대 / 기고] “집안 자랑 말자” 어느 경로당의 이색 실천강령
  • 최승민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장
  • 승인 2020.08.14 14:44
  • 호수 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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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장
최승민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장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은 작은 시설이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질서와 융화가 절실히 필요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각 경로당에는 대한노인회 중앙회의 정관에 따라 자연부락 그리고 공동주택 별로 어르신 회원들이 직접 선거로 회장과 감사를 선출하고 회장은 부회장과 총무를 임명해서 책임을 지우고 경로당을 이끌기 때문에 회장단과 회원 간의 소통과 신뢰가 존재하면서 운영과 활동 등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각 경로당은 운영의 내실과 회원들의 단합을 다지는 강령을 회원들의 중지를 모아 자체적으로 제정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발전과 평화를 다지고 있다.

다양한 강령 만들어 경로당에 게시

각 경로당이 제정한 강령 대부분의 내용은 건강과 친목, 청결, 봉사, 수범 등을 골자로 한 4~5가지 항목으로 나열돼 있는데, 이 강령은 어르신들이 항상 보고 실행할 수 있도록 거실 또는 할머니방, 할아버지방의 잘 보이는 곳에 게시돼 있다. 

그런데 경로당 실천 강령 가운데 특이한 내용이 눈에 띄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춘천시 후평1동 동산아파트 경로당의 경우 실천강령이 “집에서 일어난 일은 경로당에서 절대로 자랑하지 말자”다. 평범한 내용 같지만 어르신들의 겸손과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보다 훌륭하고 멋진 강령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주택 경로당의 경우 회원 대부분은 학력이 높고 이력이 다채로울 뿐 아니라 경제력도 비교적 풍부해 경로당에 나오면 자연히 자식자랑, 돈자랑 그리고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라며 꼰대를 자칭하는 어르신들도 간혹 있게 마련이다. 

A어르신의 경우 “오늘이 내 생일인데 큰 아들이 축하금으로 100만원, 큰딸이 200만원, 둘째아들 50만원, 막내딸은 메어커(상표) 있는 옷을 두벌이나 사왔는데 가격이 100만원은 훨씬 넘는다”는 등 자식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얘기를 듣던 대부분의 회원들이 ‘왜 우리 자식들은 어렵게 대학교육을 시켰는데도 저 회원 자식같이 못할까?’하는 부러움과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치밀어 자식을 원망하면서 때 아닌 신세타령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대화 분위기는 냉각되면서 자식자랑을 한 회원은 왕따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일찍이 깨달은 안영수 회장(75)은 취임 직후 이 같은 강령을 만들어 적극 실천하고 있으며 강령을 어기는 회원에게는 경고와 주의 등 적절한 페널티를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춘천시 근화동 호반경로당(회장 길명춘)의 강령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다. 

‘상처 주는 말 조심’ 강조한 강령도

각계각층의 어르신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므로 경로당에는 말 잘하는 회원, 멋 부리는 회원, 조금 젊고 미모인 회원 그리고 유식한 회원 등 잘난 회원도 많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회원들도 있다. 

이에 따라 말 한마디로 회원 간의 사이가 틀어지고 나아가 경로당 전체 분위기를 해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호반경로당은 말조심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몇 년 전 말로 인해 빚어진 불미스러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이 경로당에서 진행된 교통안전에 대한 강의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강사로 나온 B모씨는 참석한 어르신 가운데 특정 여자어르신의 의상을 지적하고 색상에 대한 특징을 성적으로 묘사해 물의를 빚으면서 강사 자격을 상실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회원들은 말조심을 제1의 실천 강령으로 삼아 생활화하고 있다. 

명심보감에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이요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라는 말이 있다. ‘입은 화가 나오는 문이요 혀는 사람의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이 경로당에서는 입조심, 말조심이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임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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