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드라마 같은 ‘삶의 이력’
휴먼드라마 같은 ‘삶의 이력’
  • 정재수
  • 승인 2009.01.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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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영광의 100세 어르신 10명

인간의 한계수명은 얼마나 될까. 의과학자들은 보통 포유류가 성장기의 5배 정도 산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사람도 체계적인 관리를 한다면 대략 125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대 최고령자로 꼽혔던 프랑스의 잔 칼맹(Jeanne Calment)도 125세를 채우지는 못했다. 출생에 대한 확실한 기록을 가진 고령자 중 최장수자인 잔 칼맹은 1875년 2월 21일에 태어나 1997년 8월 4일, 122세 6개월을 일기로 아를르에서 사망했다. 잔 칼맹은 프랑스의 화가 고흐를 마지막으로 만나본 사람으로 유명하며 100세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117세에는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최고령자일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잔 칼맹 여사의 최장수 기록은 깨지지 않았지만, 학계는 조만간 125세를 넘어서는 장수자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빠른 속도로 고령인구가 늘고 있고, 전 세계에 100세를 넘게 장수하는 사람도 2000년 13만 5000명에서 2050년에는 220만명으로 크게 늘 것이라는 통계보고도 있다. 그러나 100세를 살든, 200세를 살든 건강한 몸으로 생활해 나가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반감할 수밖에 없다.

2008년 백세시대은 ‘100세인을 찾아서’ 코너를 야심차게 기획했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우리나라의 초고령 어르신들을 찾아 그분들의 생활습관과 섭생 유형, 성격, 가족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장수의 인자를 분석해 보자는 의도였다.

100세인을, 그것도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100세 어르신을 찾아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게 인터뷰를 마치면 그 보답은 반드시 있었다. 1908년 이전에 태어난 어르신들은 격동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나오신 분들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의 산 증인이요,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가슴에 안고 한 시대를 관통하신 분들이었다.
이 분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장수의 비결뿐 아니라 한편 휴먼드라마의 감동이었다.

이제 2009년 새해와 창간 3주년 기념호를 맞이해 본지의 지면으로 모셨던 29분의 100세인들께 경의를 표하고, 그 중에서도 남다른 이력을 지니신 분들을 뽑아 정리해 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격동의 근·현대사 온몸으로 헤쳐 온 산증인


대한민국 헌정회, 한국 의정사의 산 증인
김판술 어르신 122호 1회 (1909년 군산출생)

1909년 전북 군산출생. 일본 교토제국대학 농림화학과 졸업. 해방 후 3·1대 국회의원. 7대 보건사회부 장관. 이력으로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의정사의 산증인이다. 서슬퍼런 미군정시절 농지개혁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의정생활 중 국민방위군 사건 질타한 ‘대쪽’의원. 국내외 산을 모두 섭렵하고 현재까지 뒷동산 오르는 탄탄한 다리. 전통식단 즐기고 특히 바지락 선호.








배명고등학교 창립자, 한국 교육의 큰 어른
조용구 어르신 128호 7회 (1907년 서울출생)

“장충단 길을 걸어가는데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 입은 아이들이 앉아 울고 있어. 글쎄 학교가 문을 닫아 앉아 운다네. 그걸 어떻게 두고 보겠는가?” 조선일보 기자직 그만두고 사재 털어 민족사학 세운 우리나라 교육의 맏어른. 배명학원 개교하고 90대에도 이사장직 수행.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생활신조. 소식하며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음.








KBS특집출연으로 전국민에게 유쾌한 웃음 선사
박금순 어르신 130호 9회 (1908년 남해출생)

화를 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며 거짓말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한평생. 자신 역시 스트레스에 빠지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뛰어난 친화력. 2008년 KBS 3라디오 추석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국민에게 밝은 웃음 선사한 뛰어난 활력.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소박하고 친절한 성품. 모든 음식 다 즐기며 생선을 특히 좋아함. 막내딸과 함께 생활하며 주변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머감각을 지녔음.







옥상에 가꾼 화단 주민이 참여하는 옥상정원 만든
장영신 135호 14회 (1908년 신의주출생)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사참배는 안된다’ 100년을 지켜온 위대한 신앙의 힘. 일생을 선교활동에 몸 바치고 어린 시절 목회자를 시키려고 성가대에 앉혔던 아들은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 장 어르신이 손수 아파트 옥상에 화단 가꾸기 시작한 것이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옥상정원으로 탈바꿈. 식사량 많고 신선한 채소를 생식하는 습관.








맨발로 광교산 등산하는 수학의 천재
한형근 어르신 138호 16회 (1908년 함흥출생)


장발에 한겨울 맨발산행,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상대 압도하는 ‘기인’. 연희전문 수물과 졸업한 우리나라 수학계의 원로. 다혈질의 성격으로 일제시대 일본 천황 욕하다가 갖은 고초 겪기도.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어르신의 특이한 행적 인정 못해 마찰 빗기도. 며칠씩 깨 있기도 하고 며칠씩 몰아 자기도 하며, 식사도 며칠씩 굶다가 한꺼번에 3~4인분을 드시기도 한다.








아직도 발명의 열정 식지 않은 100세 발명왕
이명규 어르신 140호 19회 (1908년 김화출생)


16세 때 ‘곡선의 길이를 재는 방법’ 수업을 듣다가 ‘곡선 측정기’ 발명. 이후 교직의 길 걸었으나 꿈 접지 못해 발명가의 길로. 이후 300여건이 넘는 특허 등록하고, 현재까지도 발명의 아이디어를 놓지 않는 100세 발명왕. 노인종합복지관까지의 2km를 매일 왕복하며 왕성한 사회활동. 비교적 소식하는 습관. 떡과 국수 즐기며 특히 강원도 토속음식 ‘총떡’좋아해.








노인의 날 대통령으로부터 청려장 수여받은
조창열 어르신 141호 20회 (1908년 순천출생)


1·4후퇴 당시 눈보라 속에서 화차 꼭대기 타고 피난. 많은 어려움 겪었으나 타고난 낙천주의로 스트레스 줄여. 2008년 노인의 날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어르신대표로 청려장 수여받음. 지금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습관. 서울시내 공원을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산책 좋아해서 매일같이 산책하며 하체단련. 상당한 양 식사하며 인스턴트 식품부터 각종 육류까지 못 드시는 것이 없음.







덕혜옹주와 담 넘나들며 친분 쌓았던
박남순 어르신 144호 23회 (1908년 서울출생)


네 살 아래 덕혜옹주과 몰래 서로 창덕궁 담을 넘나들며 놀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피난 해 빈 들에서 수수껍데기 주워 먹으며 6남매 건사. 쉴새 없이 몸을 놀리며 일을 찾고, 남에게 신세지는 것 싫어해 병원 내원부터 일상생활 모두를 혼자서 해결. 젊은 사람과도 대화 통하는 ‘신세대 100세인’. 육류 즐기지 않으며 채식 위주의 소식 습관. 며느리와 친모녀보다 더 격의없이 지내며 항상 웃음 잃지않는 삶의 자세.







경기여고와 동갑, 활발한 사회사업 참여한
정태숙 어르신 146호 25회 (1908년 서울 출생)


아버지가 부평군수, 시아버지가 여주군수를 지낸 명문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어린시절 결혼. 재주가 아깝다고 여긴 시아버지의 배려로 경기여고, 경성사범을 나온 신여성. 교사의 길을 걸었으나 한국 전쟁 후 경기여고 동문들과 힘을 합쳐 전쟁 이후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교육을 맡아 90대까지도 활발한 사회사업을 벌였다. 소식하지만 햄, 치즈를 비롯한 서구식 식단도 마다지 않는다.








본지 ‘아름다운 동행-노년나눔 캠페인’ 촉발한
주병현 어르신 147호 26회 (1908년 장연출생)


면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공산당의 토지몰수로 인해 하루아침에 몰락한 가계. 남으로 피난 와 죽을 고생하며 재산 모았으나 모두 사기당한 모진 삶. 그러나 따뜻한 마음 잃지 않아 어려운 처지의 처자 돌봐주고 수양딸 삼아 어려운 경제형편에도 서로를 의지하는 아름다운 동행. 본지의 연말 캠페인 ‘노년나눔-아름다운 동행’을 촉발한 장본인이다.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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