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자 서울시 독거노인 가정도우미
한순자 서울시 독거노인 가정도우미
  • 정재수
  • 승인 2009.01.09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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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정성스럽게 모실게요”

2009년 기축년(己丑年) 새해가 밝은지도 10여일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며 기초노령연금법같은 굵직한 법들이 시행되면서 노인복지에 있어 다시 한번 진일보한 해였다. 그러나 이런 법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어르신들의 복지를 모두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직한 소의 모습처럼 묵묵히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삶에 지친 어르신들의 얼굴에 엷은 미소나마 띄울 수 있다. 이번 호에는 노인복지의 최일선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을 찾아 활동상과 새해의 포부를 들어봤다.


서울시 독거노인 가정도우미 한순자(58)씨는 오늘도 빨래보따리를 들고 을지로동사무소로 향했다. 장충동의 홀몸어르신 댁에 들러 빨랫감을 싸들고 세탁기가 있는 을지로동사무소까지 걸어가자면 손이 꽁꽁 얼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전에는 부지런히 홀몸어르신 댁을 돌아 빨랫감을 모으고, 오후에 세탁기를 돌릴 때가 되서야 잠시 쉴 짬이 생긴다.

그 짧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한순자 씨를 만났다. 한순자 씨를 비롯한 독거노인 가정도우미들 덕분에 서울에 사는 홀몸어르신들은 핏줄보다 반갑고 고마운 ‘가족’을 만들 수 있었다. 

서울시가 기초생활수급 홀몸어르신들에게 가정도우미를 파견하기 시작한 때는 1996년. 가정도우미들은 홀몸어르신 댁을 방문해 청소와 빨래는 물론 음식배달과 외출 동행, 건강상태확인, 관공서의 잔일까지 잡다한 뒤치다꺼리를 도맡고 있다.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홀몸어르신들이 몇 달 뒤에야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부쩍 줄어든 것도 가정도우미들의 덕택이다.

지난해 7월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돼 꼼짝없이 누워 지내던 어르신들을 요양시설에 모시기 전까지, 가정도우미들은 10년 이상 중환자의 간병업무까지 처리했다.

업무에 비하면 보수랄 것도 없는 금액이 이들의 수입이다. 하루 8~9시간 정도 일하지만 받는 일당은 하루 7시간기준 2만9320원. 말 그대로 ‘유급 자원봉사’다.

한순자씨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어르신들을 돌보다 보면 새록새록 보람과 긍지를 갖게 돼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내 몸, 내 가정 건사하기도 힘든 시기에 남을 돌보는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말 못할 고충도 참 많다. 어르신 댁을 방문했을 때 문은 잠겨 있는데 인기척이 없을 땐 섬뜩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운명을 달리한 어르신을 마주할 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어르신들과 한 가족이 돼 버렸으니 때론 업무가 아닌 무리한 요구도 두 말없이 따르고 있다.

홀몸어르신들의 입원 수발도 가정봉사원들의 몫이다. 신장투석 환자였던 어르신이 병원 음식이 맞지 않았는지 계속 설사를 하는 바람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배설물을 치우고 목욕을 시켜드리기도 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홀몸어르신들은 가정도우미를 가족보다 고맙고 소중한 존재로 대한다. 얼마가 들어있든 통장을 맡기기도 하고, 마음속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훌훌 털어 놓기도 한다. 새록새록 정이 쌓여 부모자식처럼 흉금 없는 사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그러다보니 매년 1월과 7월 순번에 따라 가정도우미가 바뀌는 것을 싫어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서울 중구에서는 7명의 가정도우미들이 홀몸어르신 70여명을 보살피고 있다. 가정도우미들의 평균연령은 40대 후반~50대. 예비 노년층에 접어든 이들이 어르신들을 보살펴드리다 되려 ‘골병드는’ 일도 다반사다.

인력난도 가중되고 있다. 가정도우미제도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매년 그만 두는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중구의 경우 당초 17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해가 갈수록 한 사람당 맡아야 할 어르신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을 책임진다는 의지만은 결연하다. 새해를 맞는 한순자씨의 각오도 비장하다. 그는 “어르신들이 건강하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냐”며 “새해에는 홀몸어르신들이 활짝 웃으며 희망을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더 세심하고 각별한 정성을 쏟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 미로처럼 얽힌 골목. 그 틈새에 붙어있는 쪽방들에 소외된 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려하고 높은 빌딩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의 이면에서 어르신들을 찾아 분주히 쪽방촌을 누비는 이들이 새해 노인복지의 진정한 보석이 아닐까.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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