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에 첫 주민등록증 받고 ‘감격’
88세에 첫 주민등록증 받고 ‘감격’
  • 황경진
  • 승인 2009.01.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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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권영희 어르신 출생신고 안돼 고단한 삶 살아

익산공무원 6년 노력 결실… 법원 ‘성본창설’허가

 

전북 익산시청의 한 공무원이 6년간 법원을 오간 끝에 권영희(88˙삼기면)할머니가 미수(米壽)의 나이에 드디어 12월 24일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었다.


다리 부상으로 입원중인 권 할머니는 그동안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아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없었다. 당연히 투표 한 번 하지 못하는 등 법적으로는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사진설명> 전북 익산시청의 한 공무원이 6년간 법원을 오간 끝에 권영희(88˙삼기면)할머니가 미수(米壽)의 나이에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고 있다.


38년 전 이곳에 사는 송모(작고)씨와 결혼한 할머니는 아버지의 성(姓)이 권씨였다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했고, 동네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권씨 할머니라고 부르다가 이후 ‘영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러나 권영희란 이름은 동네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이였을 뿐 법적 행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투표는 물론 기초생활수급 지정도 받지 못해 병원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익산시청 조경주(가정복지과)씨가 2002년부터 할머니가 살았던 거주지를 오가며 성과 이름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할머니가 사는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조씨는 결국 동네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 할 수 있도록 성본 창설 허가(성과 본을 부여받는 것)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최근 발급된 주민등록증(19200508-0000000)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태어난 해와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생일은 보리 고개 근처라는  할머니의 말을 근거로 태어난 달은 보리가 익어가는 5월로 날짜는 어버이날을 뜻하는 8일로, 그렇게 해서 5월 8일이 생일로 잠정 결정됐다. 태어난 해 역시 사별한 남편과 만난 시점 등을 고려해 1920년으로 했다.


권 할머니는 “어떻게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 하겠냐”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경주씨도 “사람으로 태어난 흔적도 없이 떠난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게 느껴져 할머니께 호적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면서 “비로소 주민등록증을 가지게 된 할머니의 얼굴을 떠 올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대영 기자/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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