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풍향계
녹슨 풍향계
  • 정재수
  • 승인 2009.01.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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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진 충남연합회장

기우는 황혼처럼 칠순자락을 포개포개 가슴에 담고 소중했던 내 기억 속 갈피에서 잊고 있던 녹슨 풍향계를 꺼낸다.

나만의 설움은 은빛비늘 눈보라처럼 쏟아지는데 내 허허로운 석양빛임을 모르고 그러랴 만은 가슴에 맺힌 노년의 얼룩진 덮개를 지워보고 싶어 허기진 꿈의 누더기를 밤새 기워본다.
광복, 민족상잔의 전쟁, 상업화, 민주화, 보리 고개, 쑥버무리, 고구마로 허기를 채운 두고 온 세월이 여기저기 깔려있다.

어슴푸레한 주소 한 장 거머쥐고 긴 명줄 이어온 고달픈 삶. 수없이 할퀴고 걷어차인 멍든 자국 뼈대만 남은 내 육신 나를 잊은 세월이 너무 깊었다.

직립의 가파른 연륜을 밟아 풀어헤친 현장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가? 허둥지둥 살아 왔는가? 2만불 시대가 행복의 지수를 높여 주는 것도 아니요 골목마다 꽉 찬 승용차가 나를 반기는 것도 아니다.

가족이 서로 소박한 꿈을 담아 어울고 사람이 서로를 존경하고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공존시대가 미소 짓지만 불현듯 사리사욕 앞에 창창히 부서지고 만다.

삶은 언제나 낯설지만 한구석 소망을 꼭 붙들고 밤잠 이루지 못한 시절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마음의 문 활짝 열고 쪽방에서 다 같이 한태 어우러져 구들목 찾아 서로 다리 뻗던 이불속이 그래도 그때가 정겹고 그리웠어라.

때늦은 발걸음 이지만 마음을 비우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으로 홀가분하다 함을 되새기며 내일 흙이 될 마음으로 강물이 될 자세로 바람결에 흘러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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