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전용극장 ‘값싸고 편안하네~’
노인전용극장 ‘값싸고 편안하네~’
  • 황경진
  • 승인 2009.02.07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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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이상 관람료 2천원… 추억의 명화 잇단 상영 관객들 호응

1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클래식 극장 앞. 지하철 종로 3가역에서 걸어서 3분이면 닿는 이 극장은 최근 노인전용극장으로 변신했다. 입구에는 현재 상영 중인 1959년에 제작된 세계적인 명화 ‘벤허’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커다란 글씨로 상영시간이 적혀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2시 30분 2차례. 상영작도 ‘벤허’ 한편 뿐이다. 여러 작품을 다양한 시간대에 편성해 상영하는 이른바 ‘멀티플렉스’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처럼 단순한 편성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다.

 

<사진설명> 실버영화관을 찾은 어르신들이 로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다음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극장 안에 들어서자 화려한 전광판과 모니터 대신 철지난 영화 포스터들이 관객을 맞으며 향수를 자극했다. 1970~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극장은 2년 전 리모델링했고, 지난해 초 또 한번 새 단장을 거쳐 복고풍의 포스터와 현대적 설비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극장 로비에는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해 놓았다.


극장 안에는 60~70대로 보이는 어르신 50여명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통상 영화를 관람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오전 10시 30분이란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다. 다음 상영시간인 오후 2시 30분이 가까워지자 극장 로비에는 더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로 가득 찼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이길희(78) 어르신은 “젊었을 때만해도 영화 구경을 많이 다녔는데 나이가 드니 부담스러운 관람료 때문에 극장을 가는 게 쉽지 않았다”며 “노인들을 위한 극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극장을 찾았다는 권순철(77˙서울 중랑) 어르신은 “요즘 대부분의 극장들이 젊은이들을 기준으로 운영되다 보니 표를 끊는 일조차 쉽지 않다”며 “간편하게 표를 끊을 수 있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이 노인전용극장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허리우드클래식에 어르신들이 북적이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고전영화만 재개봉하던 허리우드클래식이 지난 1월 21일 노인전용극장인 ‘실버영화관’으로 개관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실버영화관은 주민등록상 만 57세 이상 어르신이라면 누구나 일반 관람료인 7000~8000원 보다 훨씬 저렴한 단돈 2000원으로 영화 한편을 관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평균 정년을 기준으로 만 57세를 기준했다.


관람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버영화관 개관 이후 하루 평균 100~150명의 관객들이 찾는다. 대다수가 어르신들이다. 개관하기 전 4~5명이 이용하던 것에 비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루 문의 전화만 100여건에 달한다니 인적 드물던 극장이 활력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다.


노인전용극장이라서 어르신들만 입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전영화를 관람하고 싶은 일반인도 7000원을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최근엔 부모님과 함께 극장을 찾는 젊은이들도 크게 늘었다.  


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는 “실버전용관이 개관한 뒤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을 찾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며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300석 규모의 영화관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한 작품은 2주 동안 하루 세 차례(오전 10시 30분, 낮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 상영된다. 극장 측은 어르신들이 상영시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월 12일까지 ‘벤허’에 이어 ‘미인도’와 ‘맘마미아’ ‘더티댄싱’ 등 다양한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선택에 있어서는 어르신들의 의견도 적극 수렴할 계획이다.


김은주 대표는 “종로는 과거 어르신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사회에서 소외된 어르신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질돼 버렸다”며 “앞으로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추억을 되찾아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허리우드클래식 실버전용관의 상영영화와 시간은 앞으로 본지 문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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