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지금은 잡초 전성시대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지금은 잡초 전성시대 / 오경아
  •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
  • 승인 2021.07.30 14:40
  • 호수 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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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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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해 잡초를 뽑았건만

며칠만 정원 일을 안 해도

차마 못 볼 정도로 잡초로 뒤덮여

정원사에겐 밉기만 한 잡초도

지구 입장에선 소중한 생명체

어느 여름인들 덥지 않은 해가 없지만 매년 겪는 여름은 그 해가 가장 덥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앉았다 일어나면 저절로 나오는 신음소리처럼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내뱉어진다. 

아무리 좋은 정원 일도 여름엔 쉽게 마음 먹어지지 않는다. 며칠을 눈 질끈 감고 모른 척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정원의 참상이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 된다. 특히 덩굴 잡초는 가장 악질이다. 내가 심은 식물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덩굴이 덮여 있는 꼴을 보자면 속이 뒤집힌다. 

꼭 잘 놀고 온다고 골목에 나간 자식이 남의 집 힘센 자식에게 얻어맞고 온 꼴을 보는 듯하다. 

잡초도 밉지만 힘없이 그렇게 자리를 양보해준 내가 심은 식물들에게도 화가 난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워주고 있건만 굴러들어온 잡초에 이렇게 힘을 못쓰나 싶어 울화도 치밀고, 잡초를 뽑아내는 손길도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몇 시간 만에 두어 가마니 분량은 될 정도로 뽑아낸 잡초가 수북해진다. 등줄기와 머리 뒷쪽으로 땀이 고랑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잊고 깔끔하게 정리된 화단에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오늘의 할 일을 아주 잘했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마음을 도닥거린다. 하지만 딱 이때뿐이다. 다시 며칠이 안 되어 정원은 또 잡초에 기가 눌리고, 망연자실 거기 서 있는 나도 의욕이 꺾인다.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다시 엊그제 그 고생을 하려니 할 일도 막막하고. 그래도 한쪽에 다시 쪼그려 앉아 세상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게 있으랴, 너도 좀 살아야지, 조금은 누그러진 마음으로 풀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잡초라는 분류 자체가 없다. 세상 모든 식물에게 우리가 그 이름을 붙여줬던, 못했던 각각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알아가는 생명체일 뿐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잡초야말로 자기가 살 곳을 찾아 스스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진정한 자생식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미워할 수 없는 존재지만 아무리 맘을 가다듬어도 미운 것도 사실이다. 정원사들이 잡초를 미워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생명력이 너무 넘쳐 다른 식물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질 못한다. 

다른 식물을 덮치고, 올라서고, 영양분을 모조리 빼앗는다. 더 심각한 것은 예쁜 모습보다는 얼마나 많은 씨를 맺느냐에 특화돼 있다 보니 사방을 휘젓고 씨를 뿌리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를 지녔다. 

그러니 한 포기만 들어와도 화단은 그간 정성을 드렸던 색과 모양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잡초와 같은 성질을 지닌 식물이 있었기에 46억년 간 이 지구가 초록의 행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고마운 생명체일 수밖에 없다. 약 2년 전 고성, 속초에 일어났던 엄청난 화재의 현장은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화재가 난 그때, 검게 그을리고 타버린 식물들의 모습을 본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구의 종말이 이럴 것 같은 무서움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느새 풀들이 가득 자리를 메워서 초록의 산이 초원으로 바뀌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식물들의 강인함이 이런 기적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내 집 정원에서는 징그럽게 미운 잡초도 이 지구의 입장에서는 다 소중한 생명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식물과 협상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내가 쳐 놓은 금 안으로만 들어오지 말고 딴 곳에 가서 잘 살아라, 잡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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